★알송달송 삶★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내 친구 박종철에게!

별고을 동재 2007. 1. 15. 08:36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내 친구 박종철에게!

         @ 열사가 쓰러져간 남영동대공분실 마당에서 진행된 박종철 열사 20주기 추모식 장면

 

 

종철아!

오늘 14일은 네가 우리 곁은 떠나간 지 20년이 되는 날이구나.

오늘 네가 쓰러져 간 그 현장, 남영동대공분실에서 네 넋을 기리는 20주기 추모식을 거행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오셨다. 너무 고마웠다.

본관 건물에 너의 모습을 담은 대형 걸게그림이 걸렸다. ‘그 눈동자 별빛 속에 빛나네’라고 씌어진 문구를 보면서 너의 ‘그 맑은 눈동자’가 떠올랐지.


철아, 기억나니?

내가 너를 마지막으로 본 게 1986년 10월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함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을 규탄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성남지역에 배포하기로 했지. 너는 유인물 원고를 타자로 청타지에 쳐서 나에게 건넸고, 나는 그것을 등사기로 밀어서 유인물을 만들어 동료들과 함께 성남지역에 배포했다.

네가 완성된 청타지를 내가 있는 5동 3층에 있는 국사학과 사무실로 가지고 와서는 나에게 전했고, 나는 너에게 못다 한 말이 있어 급히 네 뒤를 따라가서는 2층으로 절반 쯤 내려가던 너를 불러 세웠지.

나는 지금도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특히 돌아서며 나를 쳐다보던 그 빨려 들어갈 듯한 순수하고 맑은 네 눈동자 말이다.


나는 곧 민민투위원장을 맡으면서 수배상태에 놓였고 그 이후 너를 더 이상 볼 수 없었어.

그리고 너를 다시 만난 건 신문기사를 통해서였여. 87년 1월 15일자였던 것 같은데, 화곡동 자취방 근처에서 사 본 한 석간신문 사회면에 너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단신으로 처리되어 있었지. 나는 내 눈을 의심했고, 도저히 그 기사를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분노에 치떨어야 했고, 우리는 선배와의 약속을 목숨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군사독재정권에 맞선 네 의로운 죽음을 추모하면서, 고문살인정권에 대한 분노의 마음을 담아 2 7, 3 3투쟁으로 힘을 모아 나갔지.

너의 죽음은 헛되지 않아 결국 그 해 6월 민주항쟁이라는 거대한 물줄기가 형성되면서 우리 사회에도 ‘군사독재 종식과 민주화 실현’의 새 장이 열리게 되었다.

실로 너의 의로운 죽음은 우리 사회 민주화의 결정적 분수령이었던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셈이지.

 


   @ 87년 당시 서울대에서 진행된 박종철 열사 추모식 장면

 

철아!

나는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관계로 요 며칠 언론의 취재요청에 응하느라 다른 일은 일절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어제는 네가 공부하고 뛰놀던 부산 혜광고등학교에 다녀왔어. 너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는 20주기 추모식이 네 모교에서 있었기 때문이지.

네 덕분에 처음으로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부산까지 갔어.

기차를 타고 가면서 네 생각이 났어. 만약 네가 지금 살아서 네 고향 부산에 내려간다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떠한 모습으로 내려가고 있을까 생각해봤지. 가슴이 미어졌다.

막상 보니 네 모교 참 좋더라. 부산 시내가 다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 있더구나. 너 학교 다니기 정말 힘들었겠다. 그래도 네 모교에 와서 한가지 의문점은 해소된 셈이다. 부산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혜광고 교정을 보면서 너의 그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에 대한 비밀이 조금은 밝혀졌으니까 말이다. 

부산에도 많은 분들이 오셨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강당에서 진행된 추모식에서 정혜인 KTX 여승무원지부장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구나.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는데, 비정규직 노동자가 양산되고 있고 우리 문제를 대하는 정부관계자들을 볼 때 과연 민주화가 된 거냐”고. 그 엄혹했던 87년 당시를 체험하지 못한 정 지부장의 말이었지만, 정말 그런 것 같다.

6월 민주항쟁이후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상당히 이루어진 건 엄연한 사실이지만, 97년 IMF사태를 거치면서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비정규직이 양산되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오히려 더욱 더 심화되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기자가 나에게 묻더구나.

“만약 박종철 열사가 지금 살아있다면 무엇을 하고 있겠냐”고.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종철이는 20년 전 우리 사회의 시대적 과제인 ‘군사독재종식과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듯이, 만약 지금 살아 있다면 2007년 우리 사회의 시대적 과제인 사회양극화 해소와 실질적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을 것”이라고.

뚜렷한 민중지향성을 가지고 있는 너였기에 나의 대답은 주저함이 없었지.

나 네 뜻에 맞게 정확히 대답 맞지?


철아, 그렇다고 너무 신경 쓸 거 없어.

네가 만약 살아있다면 지금 하고 있을 그 일, 살아있는 내가 ‘네 몫까지 투쟁할 테니까!’

나는 이미 20년 전 네 죽음 앞에 맹세한 바 있다. ‘네 몫까지 투쟁하마!’라고.

힘들 때마다 나는 늘 너의 그 맑고 순수한 눈동자를 떠올리며 나 자신을 추슬러왔어.

너는 내가 게을러지고 회피하려고 할 때 나를 채찍질하는 역할만 하면서 편히 쉬길 바란다.

 


 @ 종철이가 쓰러져간 남영동대공분실 509호실과 박정기 아버님

 

철아!

20년 전 너는 ‘그대 온 몸 깃발 되어’ 우리를 6월 민주항쟁의 대도로 이끌었어.

20년이 지난 오늘 이제 너는 다른 방식과 내용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해야 할 것 같다.

네가 쓰러져 간 남영동대공분실 509호실을 비롯한 일부 공간을 위탁받아 ‘박종철인권기념관’을 만들려고. 우리는 그 공간이 자라나는 세대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깨닫고 되새기게 하는 유력한 ‘견학코스’로 자리매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 아직도 소극적인 경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충분히 실현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네가 자라나는 세대들과 소통하고 대화를 나누는 마당이 되었으면 한다.  


 

철아!

이제 12시가 넘어간다. 밤늦게 네가 내려 보고 있을 하늘을 본다.

너의 그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가 별 빛 속에 빛나면서 내 가슴 속으로 스며오는 것을 느낀다. 철아, 잘 자라!


                                  2007년 1월 14일 밤 늦게

                                  너를 잊지 못하는 친구 학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