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하얀 설산 손에 잡힐 듯… 기사입력 | 2008-01-11
▲ 김유복의 안나푸르나 원정기 Ⅵ 이제부터는 장면이 다소 살벌한 풍광이 연출된다. 바위로 둘러 싼 산들과 돌길의 연속인 워킹 루트가 고산지대임을 알 수 있다. '도반'을 출발한지 4시간 만에 '데우랄리(Deulali 3천230m)'에 도착했다. '상그리라 게스트 하우스'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휴식을 취했다. 서양인 트레커들이 여럿이 모여 앉아 햇볕을 즐기고 있다. '촘롱'에서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이 온 영국인들이다. 한 쪽에 우리나라 사람 넷이서 식사를 하고 있어 말을 걸어 보았다. KT포항지사 동료직원들끼리 휴가차 이곳 안나푸르나트레킹에 나섰단다. 반갑기 그지없다. 이 머나먼 히말라야 산중에서 포항에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그들도 목표는 A,B,C까지였다. 마차푸차레봉 정상에 걸린 반달 양지바른 곳에서 이불을 꿰매고 있는 이곳 남자들을 보니 꽤 이색적이었다. 이불 꿰매는 일을 남자들이 하다니 웃음이 나온다. 휴식을 끝내고 12시에 '데우랄리'를 출발해 안나푸르나의 심장부를 향해 발품을 판다. 수목한계선 고도에 다가온 것 같다. 둘러봐도 나무는 보이지 않고 마른 풀과 낮은 잡목뿐이다. 전망 좋은 언덕배기에서 단체촬영을 한다. 이번 트레킹단에는 카메라 마니아들이 많아 좋은 풍경을 많이 찍는다. 특히 강치호 대원은 포항에서도 알아주는 사진작가라 무거운 삼각대며 카메라 장비를 둘러메고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한다. 좋은 작품 기대해 본다. 석양에 물든 만년설의 황금빛 연봉이 눈에 부시게 아름답다. 안나푸르나의 산 사진을 찍기에는 이제부터인 것 같다. 고봉준령이 연이어 나타나고 마차푸차레와 히운출리, 안나푸르나 사우스 등 만년설봉들이 폼을 내고 있다. 너른 초지의 평원이 나오고 그 속으로 트레커들이 빨려 들고 있다. 파란 하늘과 하얀 산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와있다. 저쪽 모퉁이를 돌아서면 M,B,C가 보일 것 같다. 바위산 아래 쌓인 눈이 녹지 않고 있다. 곁에 가서 눈 동굴이 된 틈 속으로 산적(山寂) 윤병운 대원이 들어가 사진을 찍고 나온다. 이 지역에서 지난 88년 3월에 일본 트레킹단이 눈사태를 당해 16명이나 희생된 곳이란다. 히운출리봉의 끝자락에서 생긴 일이다. 만년설과 바위가 한데 어우러져 장엄하고 웅대한 모습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히말라야의 깊고 깊은 산속이 실감 난다. 4천130m에 위치한 a.b.c를 알리는 안내판. 산모퉁이를 돌아 저만치'M,B,C (마차푸라레 베이스캠프, 3천700m)'가 보이기 시작한다. 높이 쳐진 '룽다(불교경전을 적은 천들)'가 하늘과 맞닿아 있다. 룽다가 있는 것을 보니 티베트가 가깝다는 걸 느낀다. M,B,C의 롯지는 얼어붙은 동토에 있는 전초기지 같다. 평평한 공터에는 여러 동의 텐트가 설치돼 있고 오후 3시 인데도 다들 추워 보인다. 마차푸차레봉(6천993m)이 바로 눈앞에 있다. 정말 잘 생긴 산이다. 경외감이 절로 나온다. 모두들 힘겹게 올라왔지만 눈앞에 펼쳐진 대 장관을 보고 역경의 시간을 잊어버린다. 우리 트레킹단의 최종 숙박지인 M,B,C까지 오는데 꼬박 나흘이 걸렸다. 숙소가 배정 되고 각자 짐을 정리하고 방한복과 헤드랜턴만을 준비해서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현지시간이 오후 3시 20분, 이인대장과 파상 셀파가 바쁘게 움직인다. 이제는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되는 지점이다. 만약을 대비 해야하기 때문이다. A,B,C에 갔다 오려면 4시간 정도 걸린다. 가는 길은 밋밋한 오르막이다. 그리 힘이 들지 않지만 이미 고도가 4천m에 가까운 고소에서의 워킹은 무조건 천천히 가야 한다. 히운출리와 안나푸르나 사우스봉이 바로 옆에 있다. 금방이면 올라 설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한다. 정상이 빤히 보인다. 뒤 돌아 보니 마차푸차레봉이 지척이다. 검푸른 하늘에 뜬 반달이 마차푸차레 정상부위에 얹혔다. 정말 멋진 광경을 목격했다. 얼른 카메라에 담았다. 정말 행운이었다. 저런 광경을 어디서 맛볼까.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 출발한지 2시간이 채 못 된 시각, 오후 5시에 드디어 '생추어리(Sandtuary : 聖所)'인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4천130m)에 도착했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경상북도산악연맹의 '2007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사업의 최종 목표인 A,B,C에 닿았다. 안나푸르나산군의 심장부요, 성소(聖所)인 이곳에 아무 탈 없이 전원이 당도하였다는 사실에 이번 트레킹단 단장으로서 감회가 남다르다. 모두들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기온이 떨어져 추워지는데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다. A,B,C에서 가장 높은 곳에 룽다가 쳐져있고 불교 상징물이 만들어져 있다. 그 위로 이제껏 그 위용을 드러내지 않던 안나의 맏언니 안나푸르나 1봉(8천091m)이 거대한 자태를 보여준다. 석양에 물든 안나푸르나 1봉은 고요하고 안정된 모습으로 '풍요의 여신'답게 자리하고 있다. A,B,C 롯지에서 뜨거운 밀티로 몸을 녹인다. 다이닝에서는 폴란드 남녀 10여명이 차를 마시고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가스등을 켜고 있어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도 즐거운 얼굴들이다. 내려 갈 길이 걱정스러워 서둘러 하산한다. 모두들 방한복에다 헤드랜턴을 켜고 내려간다. 앞서가는 선두 그룹이 너무 빨리 내려가는 것 같아 뒤 따라 가는 대원들이 힘들어 한다. 사방으로 둘러싼 하얀 산들이 별무리처럼 번쩍이며 내려가는 우리를 배웅해 주는 듯 사위는 조용하다. 어둠을 뚫고 쏟아지는 별들과 함께 밤하늘을 가르며 M,B,C로 귀환했다. 현지시간 저녁 7시, 저녁식사를 램프등 아래에서 허겁지겁 먹는다. 추여사가 고소증세로 고통스러워한다. 친구 양촌도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한다. A,B,C에서 내려 올 때 너무 무리한 것 같다. 미리 고소 예방약도 먹었지만 어쩔 수가 없다. 두통약을 먹고 따뜻하게 쉬는 게 제일이다. 각 방마다 상황을 살피고 나서 스태프들과 럼주 한잔을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가 차갑지만 상쾌했다. 지난해 에베레스트 트레킹 때는 마지막 고지에서 필자가 고소증세에 시달렸던 추억이 있어 새삼스러웠다. 그렇게 심한 대원이 없어 다행이다. 밤하늘에 떠있는 반달이 더욱 빛을 발하고 달빛 아래 어슴푸레 만년설을 이고 있는 설산들이 나를 다독거리는 듯하다. 짧은 양초를 밤새도록 갈수가 없어 불을 꺼야 한다. 옆자리의 양촌이 끙끙 앓아댄다. 침상속의 뜨거운 날진 물병이 더욱 고맙게 느껴지는 추운 밤이다. 그래도 마차푸차레의 밤은 뿌듯했다. 11월 19일, M,B,C의 아침이 밝았다. 마차푸차레 정상이 황금빛으로 바뀌는 장관이 연출되는 맑은 아침이다. 이른 아침을 먹고 떠나기 위해 모두들 서두른다. 어제 고소증세로 고통을 받은 추여사도 씻은 듯 나은 것 같아 안심이 됐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최종 목표인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4천130m)까지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배려해준 안나의 여신께 감사드리며 된장국을 곁들인 아침을 먹고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3천700m)를 출발한 시각이 오전 7시, '안나의 생추어리(Sanctuary)'여 안녕! 을 마음속으로 외치며 이제 하산의 길로 접어든다. 뒤돌아 본 안나푸르나 연봉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언제 또 지척에서 안나를 볼 수 있을까. 자꾸만 뒤돌아본다. 내려가는 발걸음은 모두들 가볍다. 포터들의 짐도 한결 가벼워진 모양이다. 짐을 메고 가는 포터들의 표정이 밝다. 우리 전 대원들의 카고백과 공동장비, 취사도구, 식자재 등 모든 짐을 나르는 포터들에게도 엄격한 룰이 적용된다. '포터 대장' 인 '파상 세르파(Pasang Sherpa)' 가 나야풀에서 부터 전 포터들을 지휘 통솔한다. 매일 짐의 무게를 가늠해 분배하고 고용 인원에 대한 점검과 인건비를 지불하고 감독하는 일을 하는 아주 중요한 직책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현지가이드와 쿡, 키친보이들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고 숙소도 별도로 사용한다. 대개 '나야풀' 인근에 사는 사람들을 고용하는데 포터를 잘못 택하면 아주 난감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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