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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이 나를 죽이겠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밤새 흘린 눈물이 늪이 되어 자신을 익사시킬 것 같았다고. 소설을 쓰지 못하던 시기, 슬럼프였다. 사랑하는 것 앞에서 무력할 때 사람은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이상한 일. 울고 난 뒤 마음이 놓였다.
“울 때 분하고 답답하고 억울하고…. 그런데 그런 감정들이 눈물과 함께 밖으로 흘러나온 느낌이라고 할까요.”
천운영(37·사진) 씨의 ‘그녀의 눈물 사용법’(창비)은 그 눈물 뒤에 쓰인 소설 모음이다. 우리에게 세상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는지 알려주는.
○ 진실로 이끌어 주는 눈물
소설 ‘내가 데려다줄게’는 제자와의 성 스캔들이 와전되자 죽을 작정을 하고 늪으로 온 한 남자의 이야기다. 늪에서 한 가족을 만난 남자는 죽음으로라도 증명하고 싶었던 ‘진실’이 무엇인지 스스로 혼란스러워진다. 그 대신 그가 직면하는 것은, 가까웠던 사람들에게서 외면당한 데 대한 고독과 상처다. 그때 남자는 한 줄기 눈물을 흘린다.
“진실로 데려다 주는, 진실을 깨닫게 해 주는 눈물인 거죠.”(천 씨)
그러고 보니 어떤 눈물은, 인정하지 않던 무엇을 목도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될 때 흘러나온다.
○ 흐르지 않는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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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소설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에서 사진작가의 아내는 끊임없이 욕망하는 존재다. 체계적인 몸 관리로 젊음을 유지하고 세속적인 성공에 온 힘을 기울이는 아내는, 울 줄을 모른다.
“그의 삶에는 상처와 슬픔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요. 오로지 욕망 덩어리니까요.”
그의 ‘눈물 없음’은 이 차가운 사회가 만든 ‘또 다른 눈물’이다.
○ 눈물 아닌 눈물
커다란 슬픔을 눈물로 흘려보낸 적이 있는 사람은 울고 싶을 때 다른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서 미숙아 남동생의 죽음 뒤 가족의 불운을 예민하게 감내해 온 화자는 눈물이 나올 때 오줌을 싼다. ‘알리의 줄넘기’에서 혼혈 소녀 알리는 태생 때문에 편견에 부닥칠 때 줄넘기를 하면서 땀을 흘린다. 눈물 대신 다른 물기를 내보내면서 아픔으로부터 빠져나온다.
“지금의 내 모습과 가까워요. 한바탕 울고 난 뒤에 눈물을 날려 보내는 법을 알았다고 할까요. 몸이 많이 풀렸고.”
확실히 피 냄새가 진동하던 전작들과 달리 새 소설집은 편안해졌다. 작가는 여전히 낮고 비루한 것들에 눈을 맞추지만, 그의 진술은 힘들게 읽히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작가의 목소리에 더욱 가깝게 공감하도록 한다.
○ 순결하지 않은 눈물
슬픈 영화를 보다가도, 꿈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수도꼭지 틀어 놓은 것처럼 눈물이 나온다는 작가.
“정말 눈물을 써먹고 싶은데, 안된단 말이에요(웃음).”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 나오는 점쟁이 얘기다. 애인한테 배신당한 점쟁이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편지 한 장 쓰고 약간의 눈물을 보탰을 뿐. 하지만 애인은 돌아왔다.
그 점쟁이 여자의 눈물은 물론 ‘의도’가 섞인 것이다. 슬프게도, 모든 눈물이 순결하지 않음을 작가는 알고 있다.
“이 세계가 진행될수록, 아무렇지 않게 파괴되어 갈 당신을 위해”라고 소설가 박민규 씨는 추천사에 썼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어떤 눈물이 있는지, 그 눈물을 어떻게 쓰는 것인지, 우리가 잊었던 것들을 이 작가는 일깨워준다. 아프고, 다치고, 세계의 비정함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리고 따뜻하게 눈물 흘려 달라고 작가는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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