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봉화군의 청량산(870m)은 낙타 혹 같은 봉이 연립, 그 기이한 경관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산이다.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이 청량산은 봉화읍에서 동남쪽으로 29km, 안동시에서 동북쪽으로 24Km 에 위치하며 사람들의 손때가 묻을까 두려운 듯 다소곳이 숨어있다. 금탑봉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봉우리 12개,8개의 동굴, 12개의 대와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세운 청량사를 비롯한 절터와 암자, 관창폭포 등 수많은 관광자원을 갖고 있다. 청량산도립공원 표석 뒤로 퇴계의 '청량산가' 시비가 있으며, 청량산행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지을 때, 이곳청량산과 현재 도산서원 자리를 두고 끝까지 망설였을 만큼 청량산을 사랑하고 아꼈다고 한다. 청량산은 퇴계뿐만 아니라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 등의 명사가 찾아와 수도했던 산이며, 그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전설처럼 전해온다. 퇴계의 청량산가에 나오는 6.6봉은 주봉인 장인봉을 비롯하여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경일봉, 금탑봉, 축융봉 등 12봉우리를 말하며, 모두 바위병풍을 두른듯이 산 위에 솟아있다. 또 신라 때의 명필 김생이 서도를 닦았다는 김생굴을 포함하여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방야굴, 방장굴, 고운굴, 감생굴 등 8개 굴이 있다. 특히 김생굴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 오는데, 옛날 김생이 이 굴에서 9년동안 서도를 닦은후, 스스로 명필이라 자부하고 하산할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한 여인이 나타나 자신도 9년동안 길쌈을 했으니 솜씨를 겨뤄보자고 한다. 이리하여 컴컴한 어둠 속에서 서로 솜씨를 겨루었는데 길쌈해 놓은 천은 한올 흐트러짐이 없는데 반해 김생의 글씨는 엉망이었다. 이에 김생은 다시 1년을 더 정진한 후 세상에 나와 명필이라 칭송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밖에도 최치원이 글을 읽었다는 독서대를 비롯하여 어풍대, 풍혈대 등의 12대가 있고, 최치원이 마시고 정신이 총명해졌다는 총명수와 감로수 등의 약수가 있는데 물맛이 달고 시원하다. 또 역사적 유물로 청량사와 응진전, 오산당, 청량산성 등이 있다. 오산당은 김생굴 앞에 있는데, 퇴계가 문인들과 강론하던 곳에 후학들이 세웠다고 한다. 청량산 남쪽 축융봉에는 옛 산성터가 남아있는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와 쌓았다고 하는 청량산성이다 청량산은 옛 기록에서 이르되 6.6봉, 8대(臺), 3굴을 가진 바위 산이다. 이 산의 중심에 앉은 청량사에서 두루 바라뵈는 9개 봉우리와 그 바깥쪽 3개 봉우리 합해 12봉을 사람들은 청량산 6.6봉이라 불러왔는데, 이는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날 속이랴 못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까 하노라' 는 퇴계 이황의 시에서 유래한 말일 것이다. 기암봉들이 모여서 미로와 같은 산릉과 계곡을 이룬 한편 입구만 틀어막으면 안심이었을 이 청량산은 피신처로도 적격이었다. 이 청량산으로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들어온 적이 있다. 공민왕은 청량사 법당 유리보전의 현판 글씨를 자신이 청량산을 찾았던 명확한 흔적으로 남겼다. 물론 그 누구보다 이 산을 먼저 찾아들었던 이는 스님네들이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연대사란 이름의 절을 지금의 청량사 자리에 세웠고, 그후 무려 27개나 되는 사암이 이 청량산 안에 들어 앉았다고 한다. 청량산과의 첫 대면에서는 차마 그 말을 믿기 어렵다. 청량사와 응진전 두 사암이 자리잡은 것만도 용하다 싶을 정도로, 사방에 보이는 것은 몽땅 암봉이며 하나같이 수직으로 깎아질렀다. 거기에 절이 앉기는커녕 사람이 걸어 오를 틈새나마 있을까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층암절벽들 사이로는 교묘하게 길이 나 있으며, 여기저기에 커다란 법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념으로 구도열을 사를 암자 정도는 너끈히 앉힐 만한 공간이 널려 있다. <청량산고증>에 따르면 청량산의 원래 이름은 수산(水山)이었으나 청량사 주위가 특히 절승이므로 산을 청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천지(榮川誌)>에는 낙타 타 자를 써서 타자산(駝子山)이라 기록되었다고 하니, 이는 곧 청량산봉들이 낙타의 혹과 흡사한 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 청량사 입구 모정 부근에 주차하고 직진, 약 1.5km 올라가면 입석바위 아래 응진전 입구가 나온다. 산행은 지형상 이 응진전으로 가는 길을 시발점으로 해야 쉽게 비경 곳곳을 구경할 수 있다. 입석 안내판에서 급경사 사면길을 따라 5~6분 올라가면 '청량사 1.0km, 입석 0.3km'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아랫길은 청량사로, 오른쪽 길은 응진전으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 통나무계단길로 발길을 옮겨 20분 올라가면 수십 길 절벽 중턱에 자리한 외청량사 응진전이 나온다. 683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응진전은 공민왕을 따라 피란 온 노국공주가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했던 곳이다. 응진전을 뒤로하고 5분 거리에 이르면 오른쪽 절벽 아래 바위구멍에 있는 샘터인 총명수가 있다. 총명수를 뒤로하고 2분 거리에 청량사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어풍대에 닿는다. 수십 길 낭떠러지인 어풍대에서는 내청량사를 가운데 두고 서쪽과 북쪽을 에워싸고 있는 연화봉, 자란봉, 뒤실고개, 연적봉, 탁필봉, 자소봉 등이 휘둘러 보인다. 어풍대를 뒤로하고 4~5분 가면 '←청량사, 김생굴→'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다. 여기서 산행은 오른쪽 길로 이어진다. 5분 정도 올라가면 또 나오는 삼거리에서 오른쪽 급경사길은 금탑봉으로 가는 길이다. 왼쪽 길로 5분 올라가면 김생굴에 닿는다. 김생굴을 뒤로하고 왼쪽 아래가 급경사인 사면길을 따라 15분 거리에 이르면 남쪽 청량사 방면 갈림길이 있는 지능선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에서 북쪽 가파른 능선길로 7~8분 올라가면 급경사 돌밭길로 들어선다. 8분 더 오르면 '의상봉 1.6km, 응진전 1.4km'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오른쪽 급경사 길로 30m 오르면 주능선 안부 철계단 아래에 닿는다. 철계단으로 발길을 옮겨 20m 올라가면 자소봉 중턱 너럭바위 전망장소에 닿는다. 자소봉 꼭대기는 20m 수직절벽이다. 북서쪽으로 비봉, 북으로 소백산 방면 백두대간이 시야에 와닿는다. 동으로는 일월산, 남으로는 축융봉이 마주보인다. 자소봉 철계단을 다시 내려와 안부에서 자소봉 남쪽 절벽 하단부 우회길로 5분 거리에 이르면 탁필봉 꼭대기를 밟는다. 노송 어우러진 탁필봉에서는 지나온 자소봉이 첨탑처럼 마주보인다. 탁필봉을 내려서서 서쪽 능선길로 10분 거리에 이르러 약 20m 높이 급경사 철계단을 내려서면 뒤실고개다. 대개 여기서 청량사로 하산한다. 뒤실고개에서 계속 서쪽 능선을 타고 5분 오르면 795m봉이다. 795m봉을 뒤로하고 계단길을 지나면 자란봉 안부에 닿는다. 안부에서 왼쪽으로 약 100m 내려가면 '의상봉 0.6km, 자소봉 1.3km'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다. 삼거리에서 급경사 길을 20분 더 오르면 '의상봉 870.4m' 라고 새겨진 정상비석이 있다. 정상은 주변이 숲으로 에워싸여 시원한 조망이 안 된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약 100m 더 나가면 쇠난간과 노송이 있는 전망장소가 나타난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풍광이 일품이다. 하산은 전망장소에서 남쪽 두들마 마을로 내려서는 하산로가 있다. 이 코스는 워낙 급경사여서 처음에는 조심해야 한다. 20 여분 내려서면 두들마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을 지나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20분 더 내려오면 청량폭포 앞 폭포슈퍼민박집이다. 청량사를 구경하려면 정상에서 뒤실고개로 다시 내려와 남쪽 계곡으로 20분 내려서면 청량사 본전인 유리보전이 나온다. 청량사는 문무왕 때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전해진다. 유리보전에 모셔져 있는 약사여래불은 특이하게도 종이를 녹여 만든 지불(紙佛)이다. 유리보전 현판글씨는 공민왕 친필이다. 유리보전을 뒤로하고 범종각을 지나 침목이 깔린 급경사 내리막길로 들면 왼쪽으로는 찻집 안심당이 눈길을 끈다. 산악인 이대실씨가 15년째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차를 무료로 제공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안심당을 뒤로하고 S자로 굽돌아 내리는 급경사길로 15분 거리에 이르면 주계곡 도로와 만나는 삼거리에 닿는다. 청량사 입구 삼거리를 기점으로 입석 - 응진전 - 어풍대 - 김생굴 - 자소봉 - 탁필봉 - 뒤실고개 - 자란봉을 경유하여 정상에 오른 다음, 두들마 - 폭포슈퍼민박, 또는 뒤실고개 - 청량사를 경유해 삼거리로 내려오는 산행거리는 4km 안팎으로, 4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시간이 남는 경우에는 승용차를 이용, 응진전 입구에서 약 500m 더 간 청량산휴게서 앞마당에 주차시키고, 축융봉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다. 청량산휴게소에서 올라왔던 길로 40m 거리에 이르면 왼쪽에 '얼음굴'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 방향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8~9분 거리에 이르면 오른쪽 절개지 바위구멍에서 찬 바람이 나오는 얼음굴이 있다. 얼음굴에서 북문터를 지나 25분 올라가면 '휴게소 1.3km, 공민왕당 0.3km, 축융봉 0.9km'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오른쪽 능선길로 들어가 10분 올라가면 무덤 1기가 나온다. 무덤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10분 거리에 이르면 오른쪽 바위로 오르는 철계단이 나타난다. 20m 높이 철계단을 올라가면 옛날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축융봉 정상이다. 축융봉에서 북쪽 계곡 건너로는 청량산을 이루는 12봉 중 11봉을 비롯해서 자소봉 아래 내청량사와 금탑봉 아래 외청량사인 응진전 등이 마치 동화 속의 집처럼 보인다. 낙동강 모습도 장인봉(의상봉)보다 더 넓게 조망된다. 남서족 멀리 안동 방면으로 흘러가는 낙동강과 안동호 일부가 조망된다. 올라온 코스를 역으로 내려와 안내판 삼거리에서 왕복 15분이면 공민왕당도 다녀올 수 있다. 청량산휴게소를 기점으로 얼음굴 - 북문 - 안내판 삼거리를 경유하여 축융봉을 다녀오는 거리는 약 4km로, 2시간30분이 소요된다. ◈ 등산코스 ○ 입석 - 응진전 ○ 응진전 - 산꾼의 집 - 청량사 ○ 산꾼의 집 - 경일봉 - 보살봉 ○ 보살봉 - 의상봉 - 두들마 - 청량사 ○ 청량사 - 보살봉 - 뒤실고개 - 청량사 ▶ 청량사까지의 오름길 ( 입석 - 응진전 - 산꾼의 집 - 청량사 ) ○ 입석 - 응진전 청량산 탐승로는 청량사를 중심점으로 하여 사방을 둘러싼 암봉 능선을 향해 방사상으로 뻗어 있다. 능선과 골짜기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이 없지만, 안전이나 자연보호를 위해 폐쇄한 구간을 제외한 정규 등산로만 따진다면 암봉들을 주욱 꿰는 종주길, 그리고 이 종주길로 이어지는 청량사 - 보살봉, 청량사 - 뒤실고개, 청량사 - 자란봉, 두들마 - 의상봉길이 청량산행길의 모두라고 할 수 있다. 이 산길들을 나름대로 엮어서 오르내리는 데는 이틀이면 넉넉하겠거니와, 하루 산행길로 꼽아본다면 역시 암봉 종주길이 가장 권할만 하지 않을까 싶다. 청량골 남쪽에 청량산 육육봉 중의 하나인 축융봉(845.2m)이 있지만, 이 산봉으로는 등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선 청량사까지의 오름길은 두 가닥이다. 청량골로 난 도로변의 작은 저수지(육각정)에서 시작되는 급경사 찻길, 그리고 입석에서 오르는 오솔길이 있다. 빠르고 편하기는 계곡 찻길이겠지만, 응진전쪽의 절경을 놓치고 만다. 그러므로 입석 - 응진전 - 치원대 - 오산당(산꾼의 집) - 청량사 길로 오른 뒤 하산할 때 찻길 이용을 권한다. 청량산 들목은 명호면 광석리 광석교다. 이 다리 건너 매표소를 지나 말끔한 포장도로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좁은 비포장으로 변하는 지점에서 300m쯤 더 오르면 작은 저수지와 초가를 한 육각정자가 있고, 그 맞은편으로 급경사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시작된다. 이 길이 청량사까지 난 찻길로서, 워낙 급경사인 데다가 좁아서 사찰 차량 이외는 통행을 금하고 있다. 저수지 근처는 도로가 다소 넓어서 승용차 몇 대쯤은 댈 수 있다. 저수지에서 800m쯤 청량골 비포장도로를 따라 더 올라가면 도로 오른쪽에 담양의 도담삼봉 축소판 같은 높이 2m쯤의 검은 바위봉인 '입석' 이 있다. 이 입석 맞은편(북쪽)으로 청량사 가는 오솔길이 나 있다. 바로 옆에 등산로 안내판도 서 있다. 입석 바로 아래 도로변에 작은 주차장이 있으므로 여기에 차를 대고 산행을 시작한다. 오솔길로 접어들어 천천히 8분여 걸으면 오른쪽 직각방향으로 샛길이 나온다. 응진전으로 가는 길이다. 직진하여 가면 발걸음이 편하고, 이후 20여 분만에 오산당(산꾼의 집)에 이어 청량사에 이를 수 있지만, 응진전 일대 풍치가 기막히므로 오른쪽 길로 접어들도록 한다. 가파른 길은 오래지 않아 끝나고, 왼쪽으로 산 중턱을 길게 가로질러 나아간다. 능선을 하나 감돌아들면, 곧 저 앞으로 기암봉이 나선다. 꼭대기가 둥그스름한 고구마 같은 기암이 몇 개 옹기종기 살을 맞대고 서서 하나의 커다란 암봉을 이루며 섰는데, 아침 햇살을 받아 뚜렷이 입체감이 드러난 그 기암봉 기운에 필경은 너도나도 감탄 연발이다. 기암봉 바로 아래의 작은 암자가 응진전이며, 그 기암봉을 포함한 봉우리 전체가 금탑봉이다. 응진전에는 고려 공민왕의 부인 노국대장공주가 국가 안녕을 기원하며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응진전 뒤의 암벽은 수직을 넘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천정을 이루었다. 때문인가. 이 응진전에서 기가 약한 사람이 잤다가는 밤새 가위에 눌린다고 한다. 응진전 앞 널찍한 암반에서 남쪽 축융봉으로 무심히 고개를 돌렸던 여인네들 중에는 "아이구머니나!" 하고 질겁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 이가 종종 있다. 영락없이 남녀가 관계하는 형상으로 보이기 때문인데, 사람에 따라서는 전혀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아무튼 이 축융봉 산형이 수도자의 마음을 흐트러뜨린다고 하여, 과거 응진전 요사채의 축융봉쪽으로는 출입문이나 창문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 응진전 - 산꾼의 집 - 청량사 응진전 앞을 지나면 내청량 울안으로 드는 셈이다. 금탑봉 - 경일봉 - 보살봉 - 자란봉 - 연화봉으로 이어진 능선의 안쪽, 둥근 함지박 형상의 골짜기를 내청량, 그 능선의 바깥쪽을 외청량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응진전을 한때는 외청량사라 부르기도 했다. 응진전 옆의 금탑봉 능선 허리를 지나 내청량 안으로 들어가노라면 우선 오른쪽으로 '어풍대'라 씌인 팻말이 보인다. 주탐방로를 벗어나 희미하고 가파른 길을 더듬어야 되므로 이곳은 그냥 지나치자. 조금 더 가면 갑자기 앞이 툭 트이며 내청량 일대가 한눈에 조망되는 기막힌 조망처가 나타난다. 이곳은 신라 고운 최치원이 머물던 곳이라 하여 치원대, 혹은 고운대라 부른다. 발 아래는 툭 깎아질렀고, 내청량의 공간 가운데로 길게 고개를 빼고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조망처다. 청량사를 중심으로 하여 왼쪽의 거대한 암봉은 연화봉이며, 연화봉 정상 왼쪽 바로 옆에 비죽이 귀처럼 솟아오른 암봉은 향로봉, 오른쪽 3시 방향의 뭉툭한 암봉이 내청량의 주봉인 보살봉이다. 청량산 최고인 의상봉은 연화봉 뒤의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치원대 근처, 총명수 옆에 치원암이란 암자도 있었다고 전하니, 고운과 청량산의 인연도 사뭇 깊다고 하겠으나, 고운의 청량산에서의 행적이 명확한 기록으로 남은 것은 없다. 하긴, 고운의 일화는 늘 전설이나 뜬 구름 같지 않았던가. 주세붕은 <유청량산록>에서 '고운이 명승을 편유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동남명산에 이 산의 최고인데 어찌 와보지 않았겠는가' 고 술회하고 있다. 치원대에서 탐승로를 따라 5분쯤 더 들어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윗길은 암봉 종주길인 경일봉 가는 길, 왼쪽 아래로 갈짓자의 가파른 길로 내려가면 오산당이다. 오산당(吾山堂)이란 우리 집 산이란 뜻으로서, 실제로 이 오산당뿐 아니라 청량산 전체가 이씨 문중 소유로 돼 있다고 한다. 단청을 하지 않아 한결 맛이 고풍스런 오산당 옆에는 이씨 문중 사람으로서 영양 산악계의 대부역을 해왔던 이대실씨가 산꾼의 집을 꾸며 살고 있다. 청량산은 손바닥처럼 훤한 사람이니, 길을 잘 모르면 이 산꾼의 집부터 들를 일이다. 오산당에서 조금만 더 가면 청량사이니, 절 구경마저 하고 산행길에 나서도 좋을 것이다. 산꾼의 집 앞, '약차 한 잔 거저 들고 가시라'는 팻말에는 아무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다. 팻말 그대로 약차 한 잔마시고, 제 손으로 씻어두고 되돌아나오면 된다. ▶ 암릉종주길 ( 경일봉 - 보살봉 - 의상봉 ) ○ 산꾼의 집 - 경일봉 - 보살봉 응진전 - 산꾼의 집 사이의 삼거리에서 북쪽 윗길로 가노라면 다시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은 김생굴, 오른쪽이 경일봉 가는 길이다. 길목에서 김생굴까지는 아주 가까우므로 김생굴 구경부터 하도록 한다. 김생굴은 신라의 명필 김생이 수학했던 곳으로 전한다. 다가가노라면 우선 반원형의 큰 굴이 있고, 그 위에 작은 굴이 또 하나 있는데, 위쪽에 야트막한 돌담을 쌓아둔 곳이 김생의 수도처로 전한다. 이 좁고도 궁벽한 곳에서 무려 10년간을 서도에 정진했다는 김생은 왕희지에 필적할 만한 천하명필이자 헤동서성(海東書聖)으로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김생굴을 보고 삼거리로 되돌아와 급경사 길을 오르면 금탑봉 북쪽 안부다. 여기서 남쪽 금탑봉 정산 방향 길, 안부를 꼴깍 넘어 응진전으로 가는 길도 폐쇄 팻말이 붙어 있다. 그러니 왼쪽의 경일봉쪽 능선길뿐인 셈이다. 능선길임에도 불구하고 산 자체가 위낙 가파르다보니 숨이 턱에 닿는 가파른 길의 연속이다. 중간의 일부 구간에는 굵은 밧줄을 가설해두었다. 이곳뿐이 아니다. 청량산 등산로의 아느 구간이든 철계단이나 밧줄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없다. 발 아래가 가마득한 벼랑인 곳도 연이어지므로 한시라도 방심한 상태로 걸어서는 안될 산이다. 안부를 떠난 지 20분 뒤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바위지대가 나온다. 바로 아래는 절벽이라 조망도 좋고 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 청량산을 늘 드나드는 안동, 영양 산꾼들은 반드시 여기서 걸음을 멈추고 쉬며 거풍도 한 뒤 산행을 잇는다. 이곳 거풍터에서 조금만 더 가면 '경일봉 750m' 라 새겨진 표지석이 선 곳에 다다른다. 경일봉 표지석이 선 곳을 출발, 초록 쇠사다리를 지나 밋밋한 봉 정상을 지나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면 841m봉 전의 안부다. 이후 841m봉 정상으로 가는 도중 왼쪽으로 좋은 조망터가 있다. 841m봉 정상에서 5분쯤 간 지점의 안부에는 기역자 모양의 안내팻말이 왼쪽 옆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리키고 있다. 곧장 직진하여 가파른 암릉을 밧줄을 잡으며 지나도 되지만, 다소 위험하므로 제 길을 찾아가도록 한다. 보살봉 바로 아래에서 정상까지 약 30m 구간에는 스테인리스 난간을 한 쇠사다리가 걸쳐져 있다. 정상 옆에 널찍한 암반이 펼쳐져 있고 작으나마 소나무 그늘도 있다. 그러나 남쪽 조망이 정상 암봉에 가려져 있는 것이 흠이다. 여기서 동쪽 저편 끝으로 수직절벽을 드러낸 암봉이 탁립봉이다. ○ 보살봉 - 의상봉 - 두들마 - 청량사 정상 쇠사다리를 되내려와 조금만 가면 곧 탁필봉이다. 높이 40m쯤 될까. 상상하기에 따라서는 먹을 듬뿍 묻혀 세워둔 거대한 붓처럼 보일 것도 같다. 탁필봉 바로 다음의 연적봉은 사방으로 조망이 트였고, 나무그늘도 보살봉보다 다소 짙어서 쉬며 경치를 구경하기엔 더 낫다. 연적봉 정상 쇠사다리를 내려서면 뒤실고개. '119구조요청 표지판8' 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여기서 종주를 마치고 그만 청량사로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의상봉 정상 조망이 너무 아쉽다. 뒤실고개에서 가파른 능선길을 따라 오르면 795m봉 꼭대기다. 이 봉을 넘자마자 앞에 깊은 안부가 보이고 그 뒤에 높은 절벽을 가진 암봉이 섰는데, 그것이 자란봉(821m)이다. 폭이 겨우 1m 남짓 되는, 굵은 동앗줄이 설치된 좁은 바위 협곡지대에 이어 계단길을 지나면 자란봉 직전 안부다. 앞을 보면 거대한 자란봉 암벽이 숲과 어울려 앞을 막고 있다. 여기서 왼쪽으로 100m쯤 내려가면 갈림길목이 나온다. 물론 오른쪽으로 가야 의상봉이다. 왼쪽은 계곡으로 하여 청량사 찻길 입구(작은 저수지의 육각정자)로 이어지는 길이다. 길목엔 '←의상봉 0.6km, 40분.자소봉(보살봉)→1.3km, 1시간30분, 육각정자' 팻말이 세워져 있다. 삼거리 길목에서부터는 또한 만만찮은 경사의 돌길이 시작된다. 폭이 2~3m 바위 협곡에 이어 쇠사다리를 10분 남짓 오르면 앞이 트이는 능선 위다. 여기에 다다르면 왼쪽 능선으로 난 길이 제길 같지만, 절벽으로 막힌다. 능선 너머 바로 앞으로 널찍한 내리막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잠깐만 내려가면 안내판이 선 안부다. 안부에서부터 정상까지도 또한 급경사 길. 정상은 평평한 평지를 이루었으며, 등산로 안내판과 '의상봉 870.4m'라 새겨진 표지석도 서 있다. 그러나 주변은 숲에 가려 조망이 별로이므로 정상 지나 곧장 100m쯤 더 내려가본다. 거기에 기막힌 조망터가 있다. 청량산 남서쪽 일대의 기암들과 가파른 산록, 그리고 푸른 낙동강 물줄기가 조망된다. 저 멀리까지 막힘이 없어서 가슴이 시원스레 씻기는 곳이다. 여기서는 이 산이 그저 저 앞 산들보다 더 높기만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따로이 떠올라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조망대 절벽 경계로는 쇠울이 설치돼 있고, 왼쪽 옆엔 큼직한 소나무가 서서 그늘을 드리우고 있으며, 가파른 절벽 위이니 솔바람이 끊이질 않는다. 맑을 청자에 서늘할 량자를 쓴 청량산이란 이름이 기막히게 어울리는 산임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다. 이곳 의상봉 조망대 구경마저 마친 뒤 하산은, 발걸음을 한참 되돌려 자란봉 남쪽 안부의 갈림길목까지 가서 육각정사쪽 계곡길을 택하는 것이 그간의 상례였다. 그러나 두어 해 전부터는 조망터에서 곧장 내리닫는 계곡길이 애용된다. 조망대 옆의 그늘 좋은 소나무에서 동쪽으로 족적이 나 있는데, 이 길을 따르면 된다. 처음에는 경사가 상당히 가팔라서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급경사 구간은 그리 길지 않으며, 곧 남쪽 조망이 괜찮게 열리는 게곡을 따르게 된다. 조망터에서 20분쯤 내려가면 아까 정상 조망대에서 녹슨 양철지붕들만 빤히 내려다보였던 두들마 마을에 닿는다. 두들마 마을에서 그 아래 청량골 포장도로까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구불거리며 이어진다. 두들마 마을로 내려가기 직전, 왼쪽으로 가로지르는 길이 나 있는데, 만약 팔각정자로 하산하거나 청량사로 가려면 이 길을 택하도록 한다. 아르드리 소나무가 선 지점으로 능선 허리를 지나 내려가면 가뭄에도 좀체 말라붙지 않는 계류가 흐르는 지점으로 내려선다. 이곳은 자란봉 직전 안부에서 시작되는 갈림길이 와 닿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4부 능선을 따르는 가로지름길이 계속 이어진다. 능선을 두어 개 더 넘어 가노라면 지금까지보다 한결 큰 계곡이 나서는데, 바로 청량사 찻길이 난 계곡이다. 이 큼직한 계곡으로 돌아들기 직전, 오른쪽의 능선을 따라 내리막길이 갈라져 나가는데, 이것이 육각정자로 가는 길이다. 육각정자 길로 내려가지 않고, 가로지름길을 따르면 곧 청량사 전 약 200m 지점의 찻길로 연결된다. 이렇게 청량사까지 와서 출발점인 입석으로 되돌아가는 거리까지 감안하면 약 9km에 소요시간은 느긋한 탐승 산행으로 할 경우 5 ~ 6 시간 잡으면 된다. 차량이 2대여서 두들마 아래 주차장에 한 대를 미리 가져다두고 두들마로 곧장 하산한다면 1시간 이상 단축할 수 있다. 자란봉 전 안부 - 육각정자 길은 돌길인 데다 정비가 잘 안 돼 있다. 의상봉 조망대에서 두들마로 가는 길이 나기 전에는 이 길을 하산로로 잡았다. 그러나 이제는 별 쓸모가 없는 길이 된 것 같다. 하산을 시작한 지 20분만에 두들마 - 청량사 간의 4부 능선 가로지름길을 만난다. 비가 내리면 물이 흐르는 물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급작스레 왼쪽으로 꺾이며 길이 이어지는데, 그냥 훅 지나치지 않도록 유의한다. ○ 청량사 - 보살봉 - 뒤실고개 - 청량사 청량사에서 보살봉으로 오르는 길은 암봉 능선으로 걸쳐지는 계곡길 중 가장 왕래가 잦다. 청량산 2대 핵심이라 한다면 청량사와 내청량의 주봉인 보살봉이다. 이 두 명소를 최단거리로 꿰는 탐승로이기 때문이다. 이 길로 보살봉까지 직접 오른 다음 의상봉으로 하여 앞에 설명한 코스로 하산하는 것도 좋은 산행이다. 오름길목은 청량사 동쪽 옆의 오산당이다. 오산당 옆에 거대한 고사목 줄기와 안내판이 서 있으며, 거기서 널찍한 오름길이 시작된다. 10분쯤 오르면 오른쪽으로 김생굴 가는 갈림길목이 있다. 그대로 직진, 골짜기 안으로 접어들면 작은 구름다리를 지나며, 그 직후 절벽 위의 조망처가 나타난다. 청량사와 연화봉이 특히 두드러져 보이는 곳이다. 조망대 지나 10분쯤, 역시 가파른 길을 오르면 작은 지능선 위에 다다른다. '청량사 0.6km, 김생굴 0.6km, 응진전 1.1km' 라 쓰인 팻말이 서 있다. 이후는 능선이지만 여전히 가파른 경사로 길이 이어지며, 20여 분 뒤에 보살봉 아래 닿는다. 청량사에서 보살봉까지는 1km 남짓한 거리지만 워낙 가팔라서 건각의 남자라도 50분쯤 걸린다. 이후 가장 짧게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코스를 잡는다면 뒤실고개 - 청량사 코스다. 이렇게 잡으면 총 산행시간이 2~3시간에 불과한 미니 코스가 될 것이다. 보살봉에서 뒤실고개에 이르기 전의 능선에서 왼쪽 계곡으로 빠지는 길들은 모두 폐쇄되었다. 보살봉 정상, 연적봉 정상을 모두 구경하고 간다해도 뒤실고개까지는 40분으로 족하다. 뒤실고개는 8번 119구조 팻말이 있으므로 이를 표지 삼아 찾아간다. 뒤실고개에서 청량사로 바로 내려가는 길은 계곡길로서, 길이 잘 정비돼 있다. 물론 다른 산에 비하면 가파른 길이지만, 그래도 청량산에서는 비교적 완경사라 할 수 있는 길이다. 고개를 내려선 지 20여 분만에 청량사 유리보전 옆으로 내려서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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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석나루 - 내청량사 - 정상 - 외청량사 - 이름실 (11km, 5:00소요) 2) 남면리 - 외청량사 - 김생굴 - 경일봉 - 청량산 - 내청량사 -오산당 - 광석나루터 - 광석 3) 광석나루 앞 청량교 건너 - 청량산휴게소 오백미터 전 입석 - 오산당 - 내청량사 - 정상 - 보살봉 - 김생굴 - 외청량사 - 입석 원점회귀코스 ( 약 4시간 ). 4) 입석 - 응진전 - 어풍대 - 김생굴 - 자소봉 - 탁필봉 - 뒤실고개 - 자란봉 경유 - 정상 - 두들마 - 폭포슈퍼민박, 또는 뒤실고개 - 청량사 - 삼거리 (약 4km , 4시간 ) | |||
봉화산[중앙일보 2005-08-19] 경북도립공원인 청량산. 해발 870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다. 그러나 청량산을 걸을수록 감탄이 흘러나오며, 발품을 쉬고 있자면 앉은 곳마다 이야기가 넘친다. 한때 27개의 암자를 거느린 불국토였으며, 통일신라 때 명필 김생, 그리고 대학자 최치원이 공부했던 곳. 조선시대에는 퇴계 선생이 청량산에서 학문의 기초를 닦았고, 퇴계 이후로 선생의 학문과 인품을 흠모하는 후학들이 성지 순례하듯 올랐던 산이니 그럴 수밖에. 매표소에서 2.8㎞를 들어가 산행 기점인 '입석'에서 등산화 끈을 조여 맨다. 외유내강형의 산 "청량산은 외유내강형의 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언뜻 보면 부드러워 보이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이내 암산(岩山)입니다. 그래서 퇴계의 학문을 청량산에 빗대곤 하지요." 길벗으로 동행한 청량산박물관 학예연구사 정민호씨의 설명이다. 청량산 12봉 중 하나인 금탑봉(金塔峯.620m)에 오르니 청량사의 부속 암자인 응진전(應眞殿)에 우선 닿는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사연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고려 말 공민왕은 정략결혼 차원에서 원나라 노국공주와 결혼한다. 공주는 고려인을 자처하며 공민왕을 진심으로 도와 고려 백성들의 사랑을 받는다. 아쉬운 점이라곤 결혼한 지 8년이 되도록 아기가 안 생긴다는 것이었다. 왕은 중신들의 간청을 못 이겨 후궁을 얻으나, 이를 두고두고 미안해 했다 한다. 이후 부부는 홍건적의 침입 때 개경에서 피난 와 석 달 정도를 안동에서 지낸다. 공주는 이 기간에 응진전에 와서 기도를 드렸다 하니 기도의 내용은 짐작이 간다. 개경으로 돌아간 뒤 공주는 임신을 하나 난산 끝에 숨지고, 이후 공민왕은 마음의 병을 얻어 굴절된 말년을 보냈다는 것이다. 응진전의 16 나한상 중에는 노국공주를 닮은 것이 있어 지금도 기묘함을 느끼게 한다. 어쨌든 봉화에서는 현재도 공민왕과 공주를 위해 동제를 지내는 곳이 많다 한다. 굽이굽이 맺힌 사연을 듣자니 끝도 없는 것이 청량산이다. 청량산의 '꽃술' 청량사 길은 금탑봉을 휘감으며 어풍대(御風臺)에 닿는다. 청량산 전망대 중 가장 풍광이 빼어난 곳이다. 청량산의 뭇 봉우리들이 빙 둘러 연꽃잎 마냥 하늘을 향해 있고, 그 중앙에 꽃술에 해당하는 청량사가 앉아 있는 장관이 펼쳐진다. 예서 조금 더 가면 김생이 글씨 공부를 했다 하는 김생 굴, 퇴계가 공부하던 자리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 등 허다한 유적을 만난다. '산을 유람하는 것은 독서와 같다'는 시구의 뜻을 알 듯 모를 듯한데, 어쨌든 지금 사람들은 선인들 흔적을 따라 걸으며 부지런히 청량산을 '읽을'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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