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가 있는방★

직장인들의 '불황 스트레스'

별고을 동재 2009. 4. 2. 12:51

직장인들의 '불황 스트레스'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직장인들의 '불황 스트레스'가 도를 넘고 있다. '경비절감'을 외치는 회사 경영 방침에 따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씀씀이를 줄이는 것은 기본이고 회사에서 잘릴까봐 아파도 말도 못한 채 끙끙 앓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는 것.

◆자린고비 스트레스=때아닌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도 지역 한 회사의 사무실은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부터 경비절감을 위해 난방시간을 줄여오다 3월부터는 아예 난방시스템 가동을 중단했다. 직원들은 "봄이지만 사무실 안은 냉기가 심해 차라리 햇살 내리쬐는 밖이 더 따뜻하다"고 푸념했다.

꽁꽁 얼어붙은 경기 속 '경비절감'을 위한 회사 측의 피나는 노력이 계속되면서 직장인들은 '자린고비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다른 회사에서는 2월이 되면서 늘 정수기 옆에 비치돼 있던 공짜 커피가 슬며시 사라졌다. 부서비가 삭감된 데 따른 조치였다. 한 중소업체는 청소하는 아줌마를 해고하고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각자 자기부서를 청소하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김모(35)씨는 "평소보다 10분 일찍 출근해 부서 곳곳을 쓸고 닦고 있다. 직원들 사이에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라는 자괴감도 들지만 다들 어렵다 보니 꾹 참고 있다"고 한숨만 내쉬었다.

직장마다 커피와 차 비치 안하기, 점·소등 시간 관리, 회의·교육때 음료제공 안하기, 중식시간 모니터 대기모드 전환, 문서출력·복사 제한 등은 기본이다.

◆아파도 '쉬쉬'=동네 한 마트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있는 점원 이모(52·여)씨는 최근 요통이 생겨 걷는 것도 힘들지만 혹여 잘릴까봐 마음 놓고 병원도 못 가고 있다. 이씨는 "나이 50에 얻은 직장인데 몇 개월 만에 그만둘 수는 없다"며 "아프다는 내색도 못하고 퇴근 후 병원 물리치료를 받는 것이 고작"이라고 말했다.

노동부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지난 1월 대구지역 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17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지만, 업무상 사고나 질병을 앓고 있는 근로자 수는 71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814명에 비해 12.5% 감소했다. 전국적으로도 15.4%가 줄어들었다. 이는 고용불안으로 인해 근로자들이 질병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늘어났기 때문.

한 업체에서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는 조모(52)씨는 "업무 도중 접촉사고로 부딪친 어깨 통증이 심해지고 있지만 아직 회사 측에 산업재해 신청을 해 달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며 "괜히 구조조정 대상자로 찍힐까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성 직장인은 더 서글퍼=2년 전 사내 결혼한 30대 여성 A씨는 얼마 전 회사로부터 "떠나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내부부가 구조조정 대상 1순위였기 때문. 김씨는 "남편에게 짐이 될까봐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출산을 앞두고 산전 후 휴가를 신청했던 B씨는 "그만두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각종 압박을 견디지 못해 결국 스스로 회사를 떠났다. 그는 "집에서 아이나 보지 왜 회사에 나오느냐는 등의 인신공격성 발언에 자존심이 상해 참을 수가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가뜩이나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는 여성 비정규직은 더하다. 모 초등학교에서 파트타임 조리사로 일하던 C씨는 학교 측이 "경비절감을 위해 4시간 정도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뒀다. 학교 측은 "정규직 조리사와 협의해 근로시간을 조정하라"고 떠밀었고 결국 힘없는 C씨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경제위기 속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위에 있는 여성 노동자들은 1차적인 희생자가 되고 있다. 대구지역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경제활동 중인 인구는 남성이 68만7천명으로 1천명(0.1%) 증가한 데 비해 여성은 48만9천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천명(-1.1%)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국여성노동조합 대구지회 관계자는 "비정규직 여성들의 해고 관련 상담이 최근 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