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요지경★

걸어서 올레 오토바이로 올레

별고을 동재 2013. 4. 1. 12:52


간밤에는 텐트가 아닌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했다. 제주도는 '삼다도(三多島)'라는 말이 있을 만큼 여자와 돌과 바람이 많은 섬이다. 화산 활동으로 솟은 섬이라 돌이 많다보니 변변한 야영장이 없다. 특히 겨울철 칼바람은 태풍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거셌다. 잠이 들었다가 강풍에 텐트와 함께 바다 한가운데까지 날려갈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바다 수온이 가장 낮고 바람은 제일 거세다는 음력 2월 영등철이 코앞이라 모든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 결국 바깥 잠을 포기하고 왔던 길을 거슬러서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던 것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낸 하룻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는 몇 년 전 묶었던 홋카이도의 '라이더하우스'와 많이 닮았다. 다른 점이라면 제주는 올레꾼을 비롯한 여러 관광객들을 위한 곳인 반면 홋카이도는 거의 오토바이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점이다.





게스트하우스는 숙박료가 저렴한 편이라 젊은 층이 많이 이용하고 서로 여행정보를 주고받거나 함께 파티를 즐기는 등 분위기도 흡사해서 재미있다. 홋카이도 라이더하우스를 이용할 당시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난다.

산방산 근처 게스트하우스를 나와서 다시 서귀포를 지난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정북에 제주시, 정남에 서귀포시가 위치해 있다. 따라서 서귀포를 지나면 제주도 해안의 절반을 넘어선 셈이다. 섶섬을 바라보며 보목포구를 거쳐 쇠소깍에 이르는 길은 올레길 6코스에 해당된다.





제주도 서편 올레길은 내륙의 밭고랑과 오름의 비탈을 거쳐 곶자왈 같은 숲도 지나지만 산방산을 지나 남쪽에 접어든 올레길은 대부분 해안을 따라 이어진다. 게다가 서귀포를 지나면서 내가 달리는 '오토바이 올레'와 겹치는 구간이 많다. 올레꾼을 만나면 오토바이 속도를 낮추고 길을 열어주곤 하는데, 서로 가볍게 목례를 나누며 지나치기도 한다.

제주도에서 오름을 발견한 남자

계속해서 해안도로가 쇠소깍, 위미항, 남원 큰엉해변을 들락날락하며 이어진다. 남원을 지나 대로에 들어서자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길을 조금 비틀어 갤러리로 향한다. 고인이 된 사진작가 김영갑이 생전에 남긴 사진들을 전시한 공간이다. 김영갑은 1982년부터 제주도와 뭍을 오가며 사진작업을 하다가 제주풍광에 반한 나머지 1985년에 아예 건너와 섬사람이 됐다. 이후 그는 제주도를 구석구석 거닐며 수많은 사진을 남기고 폐교를 이용해 전시공간인 두모악을 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 루게릭병이 찾아왔다. 전신의 근육이 굳으며 힘을 잃어가는 치명적인 병마와 싸우면서도 그는 카메라를 놓지 않았고, 결국 더는 카메라를 들어 올릴 수 없게 됐을 때 제주도 품안에 안겼다. 그때가 2005년이었다.





그는 제주도의 모든 것을 사진에 담았다. 한라산, 해안, 마라도, 시장풍경, 숲, 돌담길, 해녀들…. 그중에도 특별히 오름을 주목했다.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제주도를 찾는 이들은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해안선을 따라가며 만나는 경치가 주된 관광 코스였다. 김영갑은 사람들의 관심 밖이던 오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오름의 재발견이라고 할만 했다. 그로 인해 제주도는 관광지가 아닌 '여행지'가 됐다. 오름은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구경거리가 아닌 올라야 하는 체험대상이어서 여행자의 노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최근 올레길이 뜬 것도 그런 흐름의 연장선상처럼 보인다. 관광이 아닌 여행을 즐기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여행방식이니까.





용눈이에 올라 우도를 보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을 나서는데 눈발이 날린다. 오토바이 올레길로 돌아와 표선을 거친 뒤 오징어와 한치가 널린 산양해안도로를 달린다. 섭지코지, 성산일출봉을 거쳐서 도착한 성산항은 우도로 들어가는 배를 타는 곳이다. 하지만 강풍으로 배가 뜨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나붙은 채 매표소가 닫혀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길을 비틀어 내륙으로 방향을 잡고 용눈이오름으로 향한다. 용눈이오름은 다랑쉬오름과 함께 김영갑 작가가 즐겨 찾으며 많은 사진을 남긴 곳이다. 용눈이로 오르는 길은 한가로운 산책로처럼 여유롭게 고도가 높아지더니 어느 새 정상에 다다른다. 사방이 막힘없이 트인 시야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비록 거리가 좀 멀긴 하지만 동쪽 바다에 뜬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선을 왼편으로 돌리면 지미봉, 말미오름에 이어 손에 잡힐 듯이 우뚝한 다랑쉬오름 등 온갖 오름들이 만든 울룩불룩한 산그리메 위에 솟은 한라산까지 최고의 전망을 선사한다.





종달리해안으로 돌아와 계속해서 월정, 세화를 지나 함덕서우해변에 이른다. 뽀얀 모래밭과 검은 바위, 옥빛바다가 어울린 예쁜 해수욕장이다. 이어지는 조천읍성(연북정)마을 돌담길을 누비며 제주만의 멋스러움을 만끽한다. 삼양검은모래해변을 지나자 사라봉이 나타난다. 제주 해안을 일주한 것이다. 뭍으로 가는 배는 내일 아침에 제주항에서 탈 예정이다. 오늘밤은 어디서 묵을까?

김종한

(blog.daum.net/zevra) 허영만의 문하를 거쳐 1990년 월간 < 보물섬 > 에 단편 '환상여행'으로 데뷔한 만화가로 < 화이팅바람이 > < 플라잉타이거 > < 신의 손 > 등을 펴냈다. 바이크로 일본을 전국 일주한 < 열도유랑 12,000킬로미터 > 도 출간했다. 바이크 레이스와 투어링을 즐기고 한 때 진돗개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경력도 있다.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는 1인당 요금제로 대부분 1~2만원 안팎이다. 남녀 단체실, 2~4인실 등이 따로 있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공동사용이고 식기세척도 직접 해야한다.

다양한 여행자들이 만나 정보를 교환하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기회가 있는 반면 개인공간은 적다.

바비큐 파티나 아침 식사비 등은 별도로 책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