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선교장 전경
선교장은 조선 세종대왕의 둘째형인 효령대군의 10대 이내번이 이곳에 터를
잡 았다. 그런 이후 300년을 이어 온 집으로 99칸을 갖춘 조선후기의
전형적이 사대부의 저택이며 1965년 중요민속자료 제5호로 지정받았다.
선교장은 배다리의 집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이내번이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많은 족제비가 눈에 띄어 이곳까지 쫓아
왔지만 그 많은 족제비가 바로 이곳에서 없어졌다. 그 후 이곳에 자리를
잡아 선교장을 짓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선교장 앞에 큰 도로가 나고 논밭이 펼쳐져 있지만 예전에는 경포호수가
집 앞까지 이루러 배를 타야 나들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배다리 집으로
불렸다. 그 배다리집 선교장을 지난 주말에 찾아가봤다.
99칸짜리 집 앞에는 커다란 우물이 그곳을 지키고 있는
듯했다.
선교장은 남성과 여성이 드나드는 문이 따로 있었다.
왼쪽이 남성들이 출입하던 문, 오른쪽이 여성들이 출입하던
문
선교장 안채
<물레야 물레야> 영화 촬영 장소였던 널다란 선교장 입구에 들어섰다. 평일이라 그런지 조용하고 한가로웠다. 진 초록의 잔디가 기와집과 잘 어울리면서 평화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이내번의 조카 벌 된다는 분이 안내를 자처했다. 그분은 선교장을 속속들이 아주 잘 알고 있어 우리는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는 그런 기분이었다. 역사가 그렇게 재미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손님들이 묵던 방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는 답사팀
그는 그곳을 역대 대통령들이 찾았던 이야기를 해주어 생동감을 주기도 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그곳을 찾았던 이유는 감옥에 계실 때 이휘호 여사가 선교장 책을 제일 처음으로 보내주어 감옥에서
나가면 선교장을 꼭 찾아 가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박정희, 김영삼 전직 대통령들께서 그곳을 찾았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또한 그곳에는 200명분의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은그릇이 있다고 했다.
열화당은 손님을
대접하는 사랑채이다.
이 건물은 이내번의 손자 이오은에 의해 순조 15조(1815년)에
지어졌다.
열화당에 있는 누마루, 마치 여성의 치마폭이 사뿐히 들려있는 기와의 선이
아름답다.
겨울에는
이곳에서 손님들을 대접했다고 한다.
열화당 뒤에 있는 공원 같은 정원
미로 같은 집의 구조 안내자가 없었다면 헤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교장 안에 있는 부엌, 아궁이, 방의 모습 그리고 이쪽 건물과
저쪽 건물을 이어주는 마당의 풍경
커다란 아궁이가 그곳이 얼마나 넓은 곳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큰 돌을 놓아두어 건너기
편하게 했다. 그런가 하면 앞마당에는 마사를 뿌려놓았다. 그런 이유는
혹시 밤손님이 들어오면 마사 밟는 소리로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게 했던 거라 전한다. 그 소리를 듣고 나도 귀를 기울여 직접 걸어보았다. 마사
밟는
소리는 "사각사각"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리의 조상이 얼마나 지혜롭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자미제
활래정 활래정은 선교장 정원에 판 인공 연못 위에 세운
정자
초가집과 널판
외별당, 지금 이곳은 이내번의 후손이 살면서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외별당 담에 핀 꽃들 그곳에서도 꽃은 피고 지고 세월은 소리없이
흐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