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달송 삶★

이명박 정부, '사과 9단'이라굽쇼

별고을 동재 2008. 11. 11. 12:27


[오마이뉴스 김학현 기자]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단체나 기관, 정부라고 다르겠습니까. 다 사람이 들어가 일하는 곳인데요. 그러니 정부가 절대로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무엇인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여겨지면 그 실수를 사과하고 책임지라는 요구도 하는 것이지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얼마 되지 않아 불거진 종교편향 문제도 그렇고, 유인촌 문화부 장관의 욕설 사건도 그렇고, 강만수 재정부 장관의 종부세와 관련해 헌재와 접촉했다는 발언도 그렇습니다. 모두 실수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저질러진 일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사과의 진정성

그러기에 국민은 사과를 요구하게 되지요. 그런데 사과라는 게 그렇습니다. 첫째는, 진정으로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는, 재발방지와 책임이라는 차원의 진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그저 립 서비스를 받고 싶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연이은 사과 발언은 둘 중 하나, 혹은 둘 중 둘을 모두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끝도 없는 사과 퍼레이드, 국민이 바라는 것하고는 너무 거리가 멉니다. 예전에 김종필씨를 일컬어 '정치 9단'이란 말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다른 이들이 이 소릴 듣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이명박 정부를 일컬어, '사과 전문 정부'니, '사과 9단 정부'니 하는 말을 할 정도입니다.

'정치 9단'이란 말은 그만큼 정치 분야에서 뛰어난 솜씨를 발휘한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사과를 제대로 한다는 의미일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과를 잘한다는 말은 진정성이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 책임 등이 후속조치로 따를 때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연이은 사과사태는 사과만 잘하는 일로 보입니다.

대통령의 사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많은 분들이 이번 위기를 10년 전 외환위기와 비교하는데 단언컨대, 지금 한국에 외환위기는 없다"고 말했다.
ⓒ 남소연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유감 표명을 세 번씩이나 한 대통령입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 '소통의 부재'였다고 자인하며 했던 두 차례의 대국민 사과가 있었고, 종교편향 논란으로 세 번째 공개사과를 했습니다.

지난 6월 국토해양부의 지리 정보 사이트 '알고가'의 사찰 정보 누락 사건, 어청수 경찰청장 사건, 지난 7월 경찰의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차량 과도검문 사건 등으로 불거진 불교계의 종교편향 불만은 급기야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불심의 악화가 수그러들 기미가 없자 이명박 대통령은 결국 지난 9월 9일 "종교편향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부 공직자들의 언행으로 불교계가 마음이 상하게 된 것을 심히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의 사과를 했습니다. 이런 사과를 보고 누가 진정성이 있다고 보겠습니까.

어떻게 되어 가는지 언론과 국민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다가 어쩔 수 없으니까 하는 사과, 마지못해 하는 유감 표명, 그래도 '대통령이니까 이쯤해서 물러서자'고 불교계가 생각한 모양입니다. 불교계는 이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에 진정성이 있다고 보고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키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불교계가 이긴 것 같지 않습니까.

정부 관료들의 사과



▲ '야당'에 뺨 맞고, '사진기자'에 화풀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사진기자들을 향해 욕설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0월 26일 오후 세종로 문화관광체육부 기자실에서 '국민과 언론인께 사과드립니다'는 제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유 장관은 국감장에서 '사기꾼' 등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다며, "이렇게 후레쉬가 떼로 갑자기 터지는 바람에 제가 너무 깜짝 놀라서 얘기를 하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라고 손짓을 해가며 해명하고 있다.
ⓒ 권우성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10월 24일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기자들에게 삿대질을 하며 "사진 찍지마! XX 찍지마! 성질이 뻗쳐서 정말, XX 찍지마!"라며 욕설을 하는 장면이 YTN 카메라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일파만파로 퍼졌고, 급기야 국회 출입 사진기자단은 공식사과를 요구했습니다. 결국 이틀 후 유 장관은 공식사과를 했습니다. "국민 여러분과 언론인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리고 언짢게 한 점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라고. 흥분한 상태에서 갑자기 나온 말로 실수라며 책임지고 물러날 의사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 사과 역시 자발적인 사과가 아니라 요구에 응한 사과였습니다.

다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강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의 질문에 "우리가 헌재와 접촉했지만 확실한 전망을 할 수는 없다. 세대별 합산은 위헌 결정이 나올 것 같다는 말을 세제실장으로부터 들었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는 강 장관이 헌법재판소 측과 접촉해 종합부동산세 위헌소송결과를 사전에 입수했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발언이어서 큰 물의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러 번 말을 달리하며 이를 애써 무마하려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한승수 총리가 지난 9일 SBS TV에 출연, 강 장관의 '헌법재판소 접촉' 발언과 관련해 "강 장관 발언은 굉장히 부적절하고, 경제가 어려운 이 시점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습니다.

한 총리는 이어 "내각은 같이 가는 것이니, 장관이 잘못하면 책임은 당연히 총리에게도 있다"고 했습니다. 잘못은 누가 하고 애매한 누가 사과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하여튼 이명박 정부는 대부분 마지못해 하는 사과이긴 하지만, 사과에는 9단임이 분명합니다.

사과는 말보다 책임이 중요하다



'헌재 접촉'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일 속개된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답변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 남소연

작금의 사과 시리즈를 감상하는 국민의 마음은 그리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데 정부의 사과 시리즈에 문제가 있습니다. 종교 편향의 한 가운데 있던 어청수 장관이나, 공인으로서 하면 안 되는 말을 내뱉었던 유인촌 장관, 그리고 강만수 장관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퇴진 여론에는 눈도 껌벅 안 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리만(MB+강만수) 브러더스여! 영원하라!"는 말까지 하겠습니까. 한 총리가 강 장관의 발언을 사과하면서도 "국회에서 진상 조사를 하다보면 강 장관이 해명한 내용이 확실하고, 사실로 증명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하며 강 장관의 퇴진압력을 사실상 거부했습니다.

사과는 사과다워야 합니다. 즉 책임지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이명박 정부의 사과 시리즈에는 그게 없습니다. 알맹이 없는 립 서비스에 불과한 사과 시리즈란 말입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계속 잘못과 실수가 거듭된다면 누가 사과 9단 정부의 진정성을 믿으려 하겠습니까.

오바마도 지난 7일 당선 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말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이 백악관에 점성술사를 불렀다는 소문을 언급한 것인데요. 그는 누가 뭐라기 전에 즉각 자신의 말실수를 사과하고, 그날 저녁 낸시 레이건에게 직접 전화해 "즉석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부주의하게 말했다"고 사과했다고 합니다.

언론에 밀리다 갈 때까지 가서 하는 수 없이 한마디 하는 사과하고 능동적으로 찾아 사과하는 것 하고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사과 9단은 끝까지 버티다 한 마디 하는 거라고요? 립 서비스로 하는 거라고요? 그런 사과라면 차라리 사과 0단이 낫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