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달송 삶★

라면 소녀’ 임춘애 이젠 ‘칼국수 아줌마’

별고을 동재 2009. 3. 30. 12:36

라면 소녀’ 임춘애 이젠 ‘칼국수 아줌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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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박수성] 돌이켜 보면 그 아시안게임 동안은 제 일생에 몸 컨디션이 가장 좋은 때인것 같아요. 다 뛰고도 힘들 줄 몰랐을 정도였어요. 일이 되려고 그랬겠죠."

그날 그 감격과 흥분은 어느덧 가물가물해졌지만 이상하리만큼 몸이 좋았던 기억만은 지금도 생생하다. 금메달을 땄을 때 처음 느껴지는 감정은 환희보다는 "이젠 밥값을 했구나"라는 안도감이었다. 어느덧 23년이 흘렀다.

1986년 제10회 서울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당시로서는 초대형 국제스포츠제전이었던 이 대회에서 임춘애는 그야말로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취약 종목인 육상 중·장거리 800·1500·3000m에서 무려 3개의 금메달을 딴 것도 국민을 흥분시켰지만 "라면 먹으면서 운동했어요. 우유 마시는 친구가 부러웠어요"하는 하지도 않은 말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헝그리 정신'에 딱 맞아떨어지는 이 말은 당시 언론에 집증 보도되면서 신화처럼 굳어졌다. '라면 소녀'라는 별명도 붙었다. 88서울올림픽 성화 최종 봉송자로 등장해 또한번 유명세를 탔던 그는 별안간 찾아온 부상으로 은퇴해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남편 도와 칼국수 집 경영

그녀는 죽전의 한 아파트에 산다. 남편 이상룡씨와 함께 수지구청 부근에서 칼국수집을 하고 있다. 지난 10월 문을 연 가게 앞에는 '청학동 임춘애 칼국수'라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7~8년 동안 운영돼온 가게를 인수한 곳이라 단골 손님이 있어 이 불황에 그럭저럭 꾸려가고 있는 정도다.

일과는 11시에 나와 점심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오후 3시까지 점심 장사를 한 후 아이들 학교가 끝나는 3시 이후에는 아이들을 돌보는 생활이다. 한때 유공 프로축구 선수였던 이상룡 씨와 올해 중3이 된 딸 지수, 7살 터울의 쌍둥이 아들 강과 산이가 그가 살아가는 힘을 주는 소중한 가족이다.

갑작스런 은퇴 선언

그가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배 부르니까 못 뛰지"라는 소리다. 그는 그 소리만 들으면 그렇게 가슴이 아팠지만 속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나 그런 소리를 쉽게 했다.

고2때 국민적인 영웅이 된 그는 그 후 이화여대에 입학하지만 대학교 3학년때 갑작스럽게 은퇴를 발표했다. 워낙 골반에 부상이 있었던데다 대학교에 들어가 키가 크면서(금메달을 땄을 때 키가 162㎝였는데 이후 8㎝가 더 컸다) 몸의 균형이 안맞아 부상이 악화됐다.

이때 주위에서 나온 소리가 "멀쩡하던 애가 성공하고 나니까 정신상태가 틀렸다"는 얘기였다. 정작 그는 조금만 뛰어도 통증이 와 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주위의 시선은 냉랭했다. 이후 그는 사람들하고 섞이는 것도 싫어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하게 됐다.

순탄치 않은 은퇴 후

그가 은퇴 후 언론 지상에 등장한 것은 크게 두번이었다. 한번은 보험설계사로, 또 한번은 외제차 카 딜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으로는 쉽지 않은 직업이었지만 그 경험은 현재를 열심히 사는 자양분이 됐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93년 결혼한 그는 90년대 후반에 선배 친언니의 권유로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다. 그리 잘 나가는 설계사는 아니었지만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됐다.

이후 쌍둥이 아이를 가져 설계사를 그만둔 후 2004년에는 잠깐 외제차 딜러를 경험했다. 당시 언론에 상당한 비중으로 보도됐지만 실은 6개월 가량 하다 그만뒀다. 고작 3대를 팔았다. 워낙 쟁쟁한 딜러들이 많은 세계에서 얼굴 하나로 차를 파는 것이 쉽지 않았고 그의 '완벽주의' 성격도 별로 궁합이 맞지 않았다.

아직도 육상은 나의 꿈

지금은 칼국수 집을 꾸려가기도 벅차지만 그의 꿈은 초중생들에게 육상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진로발렌타인(주)의 도움으로 마라톤 동호회에 나가 회원들의 자세를 교정하고 육상 기본을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의외로 재미가 있었다. 옛날 처럼은 아니지만 지금도 20~30㎞ 정도는 회원들과 뛰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임춘애는 "헬스클럽의 트레이너도 잠깐 해봤고 동호회의 코치 등 운동 관련 일을 해보니 의외로 지도자 일에 적성이 맞는다는 걸 알았다. 아줌마의 힘으로 성격도 성격도 외향적이 됐다"며 "지도자의 길을 적극적으로 찾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