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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괴담마저 전설로 만든 ‘한국산 호랑이’

별고을 동재 2009. 6. 5. 18:11

나훈아, 괴담마저 전설로 만든 ‘한국산 호랑이’

JES|이인경 기자|2009.06.05 09:59 입력

‘한국산 호랑이’ ‘살아있는 카리스마’ ‘나본좌’ 등 나훈아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2008년 1월 괴소문 관련 기자회견 당시, 전세계 외신이 “나훈아가 지퍼를 내리자 대한민국이 숨죽였다”라고 보도할 만큼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1년반이 지난 지금까지 그는 칩거 중이지만 분명 현재진행형 톱스타다. 그러나 업계에선 평가가 엇갈린다. "철저한 프로"라는 말부터 "속을 알 수 없는 연구대상"이라는 말도 있다. 그의 데뷔 43년사와 숨겨진 뒷이야기를 공개한다.



●무명 없었던 천상 톱스타

나훈아의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1947년 2월11일 부산에서 무역상 아버지와 전업 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2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생인 형을 따라 1965년 상경해 서라벌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그의 꿈은 성악가. 학교 근처에서 음악학원을 하던 작곡가 심형섭씨와 오아시스 레코드 손진석 사장의 눈에 띄어 우연한 기회에 ‘천리길’을 취입해 일약 스타가 됐다. 아파트 한채 값이 20만원이던 시절 소속사 사무실에 들를 때마다 50~100만원식 뭉텅이 돈을 보너스로 받을 만큼 '대박'이 터졌다.

그는 1972년부터 남진과 가요계를 양분하면서 황금기를 누렸다. 인기와 자존심 대결 끝에 그는 나이를 올려 1945년생인 남진과 동갑인 것처럼 활동했다. 이 무렵, 남진의 사주를 받았다는 한 정신이상자가 깨진 사이다 병으로 나훈아를 습격해 왼쪽 뺨에 5cm 가량의 흉터를 남긴 사건도 있었다. 두 사람은 1983년 나훈아가 운영하던 은성 카바레에서 만나 오랜 감정을 털어냈다.

90년대 이후부터 서태지와 아이들, HOT 등 댄스 가수의 득세하자 방송을 거부한 채 대형 공연을 위주로 한 신비주의 행보를 보였다. 찢어진 청바지에 기타를 들고 뉴에이지, 팝 등 다양한 장르를 수용하면서 ‘젊은 오빠’로서의 카리스마도 유지해갔다. '괴담 기자회견'에서만 보더라도 깔끔한 수트에 은발의 말총머리가 '중년의 섹시미'로 부각되면서 '수컷의 상징'처럼 부각됐다.


●나훈아의 여자들

나훈아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스캔들이다. 데뷔 초 11세 연상의 톱스타 김지미와의 동거설부터 2008년 '글래머 여배우 K'와의 염문설 등 다양한 스캔들에도 휩싸였다. 공식적인 결혼도 무려 세 번.

1973년 배우 고은아의 사촌인 이숙희 씨와 결혼한 그는 이후 공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전역을 몇 개월 앞두고, 김지미와 동거설에 휩싸였다. 결국 이씨와 이혼한 뒤 1976년 김지미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은퇴를 선언한 뒤 대전에 대려가 5년간 ‘초원’이란 식당을 운영했지만 대문 앞엔 기자들의 망원렌즈가 떠나지 않았다.

1981년 이혼한 그는 “(기왕 불화설이) 난 김에 헤어진다”라는 말을 남기며 전 재산을 김지미에게 내줬다. 그뒤 가요계 재기에 성공한 나훈아는 1983년 14세 연하의 신인가수 정해인과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아내와 아이들은 하와이에 거주 중이지만, 결혼 생활 중간 중간 여러 스캔들이 터졌다. 2007년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갑자기 취소하고 잠적하면서 ‘이혼설’이 나돌기도 했다.


●인간 나훈아는 과연 어떨까?

나훈아는 "가수가 안됐으면 사업가가 됐을 것이다. 아니면 건달이 되어서 감방에 갔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호방하고 대범한 그의 성격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다만 "스타는 하늘의 별과 같아야 된다"면서 극도의 신비주의를 고수해왔다. 이 때문에 나이부터 논란이다. 1947년생이라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밝혔지만, 지인들은 “주민등록증 상으론 1951년생”이라고 말한다. 가수협회의 한 관계자는 "공식 나이와 실제 나이가 달라서 그의 지인에게 물어봤더니 ‘호적 신고가 좀 늦게 된 것’이라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1947년생인 송대관을 ‘대관아~’라고 부르며 막역하게 지낸다. 1945년생인 남진이 송대관에게 "네 친구 훈아, 잘 있냐?"라고 농담조로 말한 일화는 가수협회에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로 회자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호방한 성격은 가족들이 다 비슷하다. 소속사 사무실인 아라기획 빌딩 1층에 레스토랑이 있는데, 그 가게 주인이 나훈아 여동생이다. 성격이 대장부처럼 시원시원해서 사업도 잘한다"고 말했다.

철저한 프로 근성과 비즈니스 마인드도 가수들 사이에서 표본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 공연기획자는 "데뷔 40년이 넘었지만 자기 밴드를 완벽하게 연습시키기 위해 리허설도 실전처럼 한다. 가끔 립싱크를 하기도 하는데 너무 완벽하게 소화해내서 다들 라이브인 줄 안다"고 밝혔다.

일반 식당이나 공공장소에 함부로 다니지 않는 일도 유명하다. 한 지인은 "과거 울산 홀리데이 호텔의 나이트 클럽에서 공연을 같이 한 적이 있다. 동네에 유명한 맛집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했는데, 자기는 나이트 클럽 대기실에서 밥을 먹겠다고 하더라. 대인기피증이 아닐까 의심했다"고 털어놨다.

1986년 아라기획을 설립한 그는 직원들 사이에서 본명인 최홍기에서 따온 "최회장님"으로 불린다. 주현미와 함께 메들리 카세트 테이프를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공연 DVD나 기념물 등을 판매해 수백억원의 재산을 벌었다. 콘텐트의 힘만으로 승부해 지금도 공연만 하면 전석을 매진시키는 티켓 파워를 보인다. 대중이 자신에게 뭘 원하는지 가장 빨리 파악하고 변화하는 명석한 스타다.

한 관계자는 "신비주의 때문에 그에겐 측근이라는 게 없다. 그게 나훈아를 외롭게 만드는 동시에 가치를 높여왔다. 언제 가요계에 돌아올지 모르겠지만 ‘괴담 기자회견’의 여파가 컸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컴백하는 건 힘들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나훈아 프로필

본명 : 최홍기(崔弘基)
생년월일 : 1947년 2월 11일
학력 : 부산 초량초등-대동중-서라벌예고
가족 : 아내 정해인과 1남1녀
종교 : 천주교
취미 : 서예 독서 그림
매력 포인트 : 짙은 눈썹과 살며시 깨무는 앞니
히트곡 : 사랑은 눈물의 씨앗, 임그리워, 머나먼 고향, 가지마오, 고향역, 해변의 여인, 울긴 왜 울어, 청춘을 돌려다오, 잡초, 무시로, 갈무리 등
앨범 발표 수 : 200여장
수상 경력 : 2001년 MBC 명예의 전당 (가수부문) MBC 가요제전 본상(1998) MBC 10대 가수 특별가수상(1981) KBS 음악대상(1972) 백상예술대상 영화 주제가 부문(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