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요지경★

"저기 여자만이 있네요."

별고을 동재 2012. 4. 15. 09:14

"저기 여자만이 있네요."

저는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뭘 잘못 들었나 싶었지요.

"뭐라구요? 어디로 가는 거죠?"

그러자 C씨는 다시 대답했습니다.

"식당 이름이 '여자만'이라구요. 남도음식점으로 유명한 곳이에요."

그제서야 저는 안심이 됐습니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아 살짝 놀랐습니다. 인사동 분위기가 그렇듯이 여자만 식당도 색다른 느낌이 아닐까 기대가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식당은 여자만 출입이 가능한 곳이 아닐까 괜한 걱정도 들었습니다. 드디어 여자만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식당 간판을 보고 또 놀랐습니다. 여성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이미례 씨가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여자만에 도착한 후 곧바로 음식부터 시켰습니다. 남도음식점답게 여러가지 맛깔스런 메뉴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첫 눈에 띄는 메뉴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눈길은 바로 '참꼬막'에 머물렀지요. 특별한 양념을 하지 않고 참꼬막 그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익힌 음식입니다. 시장기가 돌았던 때라 허겁지겁 참꼬막을 까먹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참꼬막에 소주 한 잔을 기울였습니다. 참꼬막과 소주가 잘 어울렸습니다. 막걸리와 함께 해도 좋을 듯 싶었지만요. 한 참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자리를 옮겨야 할 시간이 된 것이지요. 저는 요즘 술자리는 1차로 끝내곤 했는데 지인과 만나면 쉽지 않습니다. 뭔가 아쉬움이 남고 지인이 옷깃을 붙잡으면 뿌리치기 어렵지요.

그 자리는 C씨가 계산을 했습니다. 그 사이 저는 화장실을 찾았습니다. 처음 들렀던 식당이고 내부가 다소 복잡했습니다. 식당 종업원에게 화장실 위치를 물었습니다. 살짝 모서리를 돌아 식당 입구 근처를 가리켰습니다. 저는 종업원이 가리킨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또 한번 놀랐습니다.

"여자만 남자화장실"

인사동의 남도식당 '여자만'에 있던 '여자만 남자화장실' 입구에서 잘못왔는지 순간 멈칫 해야 했다

화장실 문 앞에 붙어있는 문구였습니다. 여자만 들어가는 곳인지 남자화장실인지 순간 멈칫 했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여기 식당 이름이 여자만이었지." 다시 생각했습니다. 참꼬막에다 몇 순 배의 소주잔을 기울이다 잠시 식당을 깜박 했던 것이지요. 그렇기는 하지만 '여자만 남자화장실'이라는 말이 부조화 속의 조화인 듯 웃음도 났습니다.

그리고 왜 식당 이름이 '여자만'인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배부터 채우느라 식당 이름에 대해 잠시 잊었지만 다시 호기심이 유발된 것이지요. 여자만은 여수와 고흥 사이에 있는 바다 이름이었습니다. 여자만은 만(灣)이 위치한 북쪽 지역이 순천 지역이어서 순천만이라고 부르며, 여수 지역에서는 이 만의 중앙에 위치한 섬 명칭인 여자도에서 유래 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자만으로 부르는 해역인 것이었지요.

여기 '여자만' 식당 주인인 이미례 감독이 결혼한 남자의 고향이었습니다. 이미례 감독은 고흥 며느리였던 여자만의 갯벌은 광활해 꼬막, 피조개, 굴 등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더군요. 꼬막하면 생각나는 보성도 바로 인근 지역이지요. 결국 제가 C씨와 선택한 식당인 여자만은 꼬막으로 유명한 지역의 특산품을 직접 공수해 와 음식을 만든 셈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화장실 이야기를 하니 적절치 못한 부분도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된 마당이니 화장실 이야기를 더 이어가 볼까요. 여자만 화장실 내부는 그저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이왕이면 화장실 내부도 특별한 아이디어를 가미했다면 더 좋았을 듯 싶었지요. 예전에도 저는 특별한 화장실을 본 후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몇년 전에 음식점을 갔을 때 본 화장실이 독특했습니다. 그 당시 화장실로 가는 길은 '뒷간 가는 길'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깃집이 장작구이여서 그런지 모두가 나무 재료로 되어 있었습니다.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니 '대감실'이라고 되어 있었고 여자 화장실은 '마님실'로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대감이나 마님은 조선시대 양반문화의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 시골에서는 커다란 항아리를 땅에 묻어 화장실로 쓴 기억이 있습니다. 큰 항아리 위에 나무 판자를 두 개 얹어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짚으로 뒷처리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화장실은 어느 곳을 가나 현대식으로 전부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과거 조선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화장실 표현이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었지요.

과거 재래식 화장실은 소위 '똥 퍼'라며 똥을 처리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는 자주 보던 광경이었습니다. 똥지게를 지고 다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시골집에는 화장실에 돼지를 키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모두가 아련한 추억입니다. 그래서 과거와 다시 만나면 오히려 새로운 느낌도 있는 것이겠지요.


이번에 인사동에서 만난 남도식당 '여자만'도 기억에 남지만 그 전에도 그랬습니다. 몇 해 전에 인사동에 갔을 때도 화장실이 독특했습니다. 그 당시 인사동의 모 음식점 화장실에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화장실도 그 지역의 문화나 특징에 따라 달라지는구나 생각했습니다. 화장실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만나다니 기분도 좋아지더군요.


인사동의 모 음식점 화장실에는 아름다운 시와 그림이 함께 장식되어 있다

화장실은 문화의 바로미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화장실이 얼마나 잘 정비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수준을 말해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비해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도 많이 발전했습니다. 그렇지만 화장실이 비슷비슷해 별다른 감흥이 없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앞서 소개한 인사동의 화장실처럼 사람들에게 좋은 느낌도 주고 차별화될 수 있다면 더 낫지 않나 생각도 해봅니다.


모 영화관에는 살벌한 금연구역 문구가 있었고, 양재자동차극장은 독특하다

화장실 문화, 이제는 각 건물마다 독특한 표정을 갖고 있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과거 항아리 화장실, 재래식 푸세식 화장실 그리고 최근 독특한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추억의 상징입니다. 미래의 화장실은 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시대의 생활상 모습을 화장실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그 만큼 화장실이 중요할 수 있겠지요.

화장실의 기억이 또 다시 그 건물이나 식당을 찾게 될 정도로 달라진 세태입니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그 사람의 기분을 좌우할 수도 있으니까요. 인사동에서 지인 C씨와 만난 것은 소중한 추억을 담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흘러가더군요. 그 중에 여자만 남자화장실의 추억도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독특한 화장실의 추억을 갖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