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안동 하회마을
낙동강이 마을 주변을 크게 휘감고S자로 돌아나가서 물이 돌아가는 곳,하회(河回)마을의 동쪽으로는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271m의 화산이 있고,이 화산의 줄기가 낮게 구릉을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 있다.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서 있는 수령600년의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마을이 둥글게 형성되어 있다.풍산 류씨가600여 년 동안 대대손손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집성촌이자 기와집과 초가가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도 온전하게 보존된 곳이다.조선 시대의 유학자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하회마을에서는 서민들의'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선유줄불놀이'가 지금까지도 전승되고 있다.하회마을에 보관된 하회탈과 병산탈,《징비록》이 국보로 지정되었고 다양한 유·무형의 유산들이 보물,중요민속자료,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2010년 유네스코는 브라질에서 개최된 제34차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하회마을을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통통하게 속이 찬 배추밭 너머로 둥근 초가지붕이 어우러진 풍경은 태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기만 했다.처마 아래 매달린 곶감은 채 여물지 않았고,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에는 빨래집게들이 올망졸망 모여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이제 갓 꼭지가 잘린 무청은 담벼락에 매달려 축 늘어졌다.현재도 사람들의 일상이 그대로 영위되고 있는 자연부락 하회에는 이제는 잊혀져 가는 풍경들이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구한말까지만 해도350여 호가 살았던 부락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오늘날은150여 호가 살아가고 있다.마을 앞 강변을 따라 수백 그루의 노송 군락이 이 마을의 오랜 역사를 말해 주었다.굵은 소나무마다 저마다의 역사가 깃들어 있고,가지 사이를 지나는 바람마다 오랜 이야기와 전설이 담겨 있었다.그 솔밭에서 강을 바라보았다.가을이라 줄어든 물줄기는 유유히 모래사장 위에 펼쳐졌고,그 너머로 해발64m나 되는 높은 절벽,부용대(芙蓉臺)가 마치 스위스 융프라우의 아이거 북벽처럼 가파른 수직으로 우뚝 솟았다.부용은 연꽃을 뜻하며 예전에는'북쪽에 있는 언덕'을 뜻하는 북애(北厓)라고 불렸다.태백산에서 뻗어 온 땅줄기가 화산과 북애를 이루고,일월산에서 뻗어 온 땅줄기가 남산과 부용대를 이루며 만나는 지점에 하회마을이 둥그렇게 자리를 잡았다.그 하회를 낙동강이 포근하게 감싸고 돌아가는 형세이다.
이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하회마을은 스페인 중부의 고도 톨레도를 여행하면서 만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타호강이 둥그렇게 휘감고 흐르는 톨레도도 낙동강이 휘감고 흐르는 하회마을과 쌍둥이처럼 닮았다.톨레도를 내려다보며 터졌던 감탄사가 부용대 위에 올라섰을 때도 바로 흘러나왔다.두 곳 모두 분주하게 돌아가는 현대 문명 속에서 옛 건축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관리하며 전통을 이어 가고 있었다.하회마을을 풍수지리에서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즉'물에 떠 있는 연꽃 모양'이라고 평가한다.어디선가 아련한 연꽃향이 피어 올랐고,부용대 아래 잔잔한 강물 위로는 여행자를 실은 나룻배 한 척이 유유히 떠가고 있었다.
♠ 황톳빛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만나는 전통
강변길을 따라 걷다가 다시 마을 안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섰다.울긋불긋 늦가을 단풍은 화경당(和敬堂)북촌댁 솟을대문 앞에서도 무르익어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 냈다.화경당은 하회마을에서도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의 진면모를 보여 주는 가장 품격 높은 고택이다.안동을 비롯한 영남 일대에서7대에 걸쳐200년간 부와 명예를 누리던 화경당의 사랑채는 할아버지가 거처하던 북촌유거,아버지가 거처하던 화경당,손자가 거처하던 수신와로 각각 분리되어 있다.특히 북촌유거의 누마루에 앉으면 하회의 풍광이 한눈에 펼쳐진다.동쪽으로는 화산이 솟아 있고,북쪽으로는 부용대와 낙동강이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지고,남쪽으로는 남산을 마주본다.
지금도 전통 방식으로 가옥이 세워지고 있는 하회마을 곳곳을 거닐다 보면 전통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이 순간순간 마음에 새겨진다.황토와 자연석을 섞은 토담과 주변의 나무,풍광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기와지붕의 곡선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양지바른 툇마루 위에 매달린 황톳빛 메주와 마루에 깔린 무채는 규칙적으로 나열되어 부드러운 초가집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었다.따사로운 가을 햇살에 집도 포근해지고,메주와 무채도 맛있게 영글어 갔다.
조용하던 마을 어디선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마을 입구 공연장에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하회별신굿 탈놀이가 벌어졌다.남녀노소 모두 공연장 객석을 가득 메우고,객석 앞 공연장 가장자리 맨땅에까지 앉거나 서서 신명나는 탈놀이에 한껏 빠져들었다.하회탈과 병산탈은 국보 제121호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새삼 전통의 아름다움,신명,소중함을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 한국 목조 건축의 아름다움,병산서원
마을 장터에서 든든히 속을 채우고 하회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병산서원으로 향했다.고려 때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이었던 이곳은 본래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을1572년(선조5년)에 서애 류성룡이 지금의 병산으로 옮긴 것이다.그 후 수백 년 동안 수많은 학자가 배출되었고, 1868년(고종5년)에 내려진 흥선대원군의 사원 철폐령에도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 유서 깊은 곳이다.무엇보다 병산서원은 우리나라 목조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언급되어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특히 만대루(晩對樓)는 병산서원 건축의 백미이다. 200명을 수용하고도 남는 장대한 이 누각은 휴식과 강학의 공간이었다.누각을 받치고 있는 휘어진 기둥들은 굽이 도는 강물의 형상 그대로이고,그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도 정질 한 번 받지 않은 자연 속 돌덩이 그대로이다.만대루는 두보의 시<백제성루(白帝城樓)>중'푸른 절벽은 저녁 무렵 마주하기 좋으니(취병의만대,翠屛宜晩對)'에서 따온 이름이다.말 그대로 만대루 앞을 흐르는 강 너머 깎아지른 절벽인 병산과 마주한 만대루는 자연의 일부인 듯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만대루의 처마는 마치 선녀의 날개처럼 하늘로 날아오른다.누각 아래 기둥들 사이를 거닐면 어느새 깊은 숲 속의 우람한 나무 사이를 배회하는 듯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서쪽 담장 너머 대나무숲 뒤로는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저녁 무렵 만대루 누각 기둥에 기대어 바라보는 일몰은 묘하게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운치가 있다.옛날에 학문을 연마하던 선비들도 이 풍경을 바라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그 긴 시간이 찰나처럼 느껴졌다.세상도 변하고,위대한 인물도 사라져 간다.그렇다면 그 오랜 시간 속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덧없는 석양빛 속에서 잠시 인생무상의 진리라도 깨우친 것처럼 마음 한편이 아련한 헛헛함으로 채워져 갔다.
하늘은 더욱 붉게 물들었다.얼른 병산서원의 숲길을 벗어나서 부용대로 차를 몰았다.숨을 헐떡이며 부용대에 선 순간,나는 할 말을 잃었다.서쪽 하늘은 불타오르고 있었고,하회를 감싸고 도는 강물 위로 붉은 빛이 조용히 스며들었다.천천히 하나둘 불을 밝힌 하회를 향해 노을불이 번져 갔다.한 송이 연꽃처럼 고요한 하회는 그 불의 급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온하고 고즈넉하기만 했다.붉게 타오르는 일몰의 시간이 지나면 깜깜한 밤이 찾아들기 전에 푸르스름한 여명의 시간이 존재한다.하회는 어느새 푸르스름한 빛에 잠겼다.그때 화산 위로 초승달이 떠올랐다.환한 햇살 속에 느리게 흐르던 구름은 야음을 따서 쏜살같이 서쪽으로 달아났고,강물은 멈춘 듯 검게 변했다.밤이 되자 오로지 하회만이 세상 가운데서 가장 눈부신 연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여행 정보>
-도착하기
대중교통-➊ 기차:안동역에서 내려 역 건너편(교보생명 건너편)버스정류장에서46번 버스를 탄다.이 버스는 기차역에서 시외버스터미널을 거쳐 하회마을로 가니 기차보다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로 가는 편이 하회마을에 조금 더 가깝다.➋ 버스:안동터미널 건너편 호암마을 버스정류장에서46번 버스를 타고 하회마을 관리사무소에서 내린 후 하회마을까지 조금 걷는다.
자가용-서울,경기 광주,대구 출발▶중앙고속도로▶서안동IC▶안동 하회마을 풍산읍·북부 청사 방면 우측 방향▶도로 왼쪽 안동농수산물 도매시장▶안동 하회마을 표지판▶직진▶풍산읍 우회도로▶안교 사거리에서 좌회전▶하회 삼거리에서 좌회전▶하회마을 방면 우측(부산 출발 시 남안동IC로 나와 안동 시내로 진입)
-따라가기
탈놀이를 보려면 마을로 들어가기 전에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 시간을 미리 확인한다.하회마을 안내판에서 왼쪽 가운데 방향(하동 고택)으로 해서 시계 방향으로 돌며 고택들을 둘러본다.
만송정 솔숲▶나루터 건너편 부용대▶하회마을 입구의 하회별신굿 탈놀이▶하회장터▶병산서원▶옥연정사▶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 전경 보기
-먹어 보기
하회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배가 고파 가까운 맛집을 찾게 되는데 이때 하회마을 주차장 주변 장터에서 안동닭찜을 먹어 보자.양도 푸짐하고 맛도 괜찮다.안동역 앞 음식문화의 거리에 있는'거창숯불갈비'에서는 가격 대비 아주 훌륭한 질의 한우갈비를 먹을 수 있다.매운 것을 잘 못 먹는다면 찜갈비의 맵기를 미리 조절해 달라고 한다.안동 기차역 뒤편 정상동에 있는'신촌닭백숙'의 닭백숙은 청송·안동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음식이니 먹어 본다.닭다리가 하나만 나오지만 다리가 무척 크고 걸쭉한 국물에 녹두와 찹쌀이 들어 있어 양이 꽤 많다.닭백숙만으로도 배는 부르지만 이곳에 왔다면 닭불고기도 꼭 맛봐야 한다.닭고기를 다져서 간장양념에 버무리고 석쇠에 구워 먹는 닭불고기는 너비아니의 닭고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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