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 바로알기 ★

패션도 외교도 ‘펑리위안 스타일’

별고을 동재 2013. 4. 15. 10:45

패션도 외교도 ‘펑리위안 스타일’

중국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彭麗媛·51)이 외교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첫 해외 순방 길에 오른 시진핑 주석을 따라 러시아와 아프리카 3개국(탄자니아·남아공·콩고공화국) 방문에 동행한 그녀는 '패션 아이콘'으로, 또 중국의 '소프트 파워'로 주목을 받았다. 투박하고 어두운 이미지의 중국 외교에 세련된 패션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고 소프트 외교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다.

펑리위안의 외교 데뷔 무대는 파격적이었다. 지난 3월22일 첫 방문국인 러시아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한 그녀는 중국풍 패션 스타일과 파격적 행동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짙은 남색 트렌치코트에 시 주석의 청색 넥타이와 커플룩으로 연출한 청색 스카프 차림의 그녀는 우아한 자태로 시 주석과 팔짱을 낀 채 전용기 트랩을 내려왔다. 펑리위안처럼 다정한 모습을 과감하게 연출한 중국의 퍼스트레이디는 지금까지 없었다.





ⓒAP Photo 3월22일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부인 펑리위안.

중국 퍼스트레이디들은 대체로 조용한 내조를 견지했다. 후진타오 전 주석의 부인인 류융칭(劉永淸)은 거의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았고, 장쩌민 전 주석의 부인 왕예핑(王冶坪)과 덩샤오핑의 부인 줘린(卓琳)은 해외 순방에 동행한 적이 거의 없다. 어쩌다 동행해도 언론 노출은 소소했다. 1960년대 활발하게 활동한 마오쩌둥 전 주석의 부인 장칭(江靑) 트라우마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그녀는 마오쩌둥 사후인 1976년 정권 탈취를 위해 벌인 이른바 문화혁명 4인방 사건에 연루돼 숙청되었다. 이후 퍼스트레이디들의 그림자 내조가 미덕으로 자리 잡았고, 언론도 퍼스트레이디와 관련된 보도를 자제하는 것을 관례로 삼았다.

펑리위안은 외교 무대 데뷔와 함께 '패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패션 잡지 < 보그 > 중국어판 장유 편집위원은 "오랜 기다림 끝에 우리도 현대 여성의 품격을 지닌 퍼스트레이디를 중국의 패션 아이콘으로 맞이하게 되었다"라고 환호했다. 공산당 기관지인 < 인민일보 > 도 "우리는 이렇듯 아름다운 힘을 갖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펑리위안 패션의 강점은 장소와 상황과 날씨 등을 고려한 코디에서 기인한 듯 보인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짙은 남색 트렌치코트 차림에 검은색 가방을 선보였던 펑리위안은 아프리카 탄자니아 공항에서는 중국 전통 의상인 치파오(旗袍)를 변용한 흰색 투피스 차림에 하얀색 가방을 선보였다. 이런 코디에 홍색(머플러) 및 금색(하이힐) 등 중국을 상징하는 색상들이 어울린 이른바 '펑리위안 스타일'이 세계를 휘어잡은 것이다.

지금 중국에서는 '펑리위안 스타일'이 대세다. 동양적인 단순한 선의 미(美)에 현대적 세련미가 돋보이는 코트, 가방, 머플러 등 펑리위안 스타일의 의상 및 액세서리가 중국 타오바오 등 인터넷 쇼핑몰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최대 관심 품목은 '펑리위안 핸드백'으로 통하는 검은색 핸드백이다. 이 핸드백은 광저우 패션 업체인 리와이가 특별히 주문·제작한 제품이다.





ⓒAP Photo 2007년 가수로 활동하던 펑리위안이 위문공연을 하고 있다.

'펑리위안 효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디자이너 마커는 장춘 태생(1971년생)으로 1996년 전남편 마오지훙과 함께 '리와이'를 설립했다. 2007년부터 '우융'이라는 브랜드로 수제품을 출시했는데, 그녀의 디자인에는 중국의 노장사상이 담겨 있다. 우융(無用:쓰임새가 없다)이란 브랜드 이름도 노장 사상의 '무위(無爲)'에서 따온 것이다. 펑리위안이 마커를 전담 디자이너로 발탁한 동기도 단순하고 세련된 그녀의 작품 속에 중국적 아름다움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패션과 더불어 펑리위안의 '소프트 파워' 외교도 주목을 끌었다. 소프트 파워란 정치·경제·군사 따위 하드웨어적 외교 외에 문화·환경·교육·보건 같은 분야에서 교류하고 협력하고 소통하는 외교를 말한다. 중국 당국은 이미 < 2008년 외교백서 > 에서 상대국을 설득하고 중국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소프트 파워 외교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톈안먼 사태 때 사진으로 구설


특히 '신식민주의' 논쟁으로 아프리카 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은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듯하다. 최근 라미도 사누시 나이지리아 중앙은행 총재는 "중국은 아프리카의 자원을 가져가고 공산품을 판다"라며 중국의 식민주의 행태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감성에 호소하는 소프트 파워가 절실하다.

그런 마당에 이번 순방에서 펑리위안이 상당한 몫을 해냈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과 언론의 평가다. 케리 브라운 시드니 대학 중국학연구소 소장은 "펑리위안이 퍼스트레이디로서 적잖은 외교 성과를 올렸고 시진핑 주석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펑리위안은 모스크바에서는 부모 없는 아이들을 위한 기숙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의 노래와 춤을 지켜본 후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고, 알렉산드르 군(軍) 공연단을 찾아가서는 함께 노래하고 즐기면서 양국 교류에 힘써달라고 부탁했다. 한편 아프리카 콩고공화국에 도착한 그녀는 중국 정부 지원으로 건립된 병원 개원식에 참석했고, 고아원을 방문해서는 에이즈에 감염된 어린이들을 껴안고 컴퓨터·인형·책가방 등을 선물했다.

이러한 펑리위안의 소프트 파워는 천부적 재능과 이력에서 나온다. 유명 가수로서 현재 인민해방군 가무단을 이끄는 현역 소장인 그녀는 2009년부터 금연 홍보대사로 활동해왔고, 2011년 2년 임기의 세계보건기구(WHO) 결핵 및 에이즈 친선대사로 임명된 이후 에이즈 퇴치 활동에도 열성을 보였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금연 캠페인을 벌였던 그녀는 이번 아프리카 순방에서는 에이즈 퇴치 행사장을 찾아 연설했다.

하지만 호사다마일까. 세련된 패션에 우아한 매너로 국내외 언론의 각광을 받던 펑리위안은 지난 3월 말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한 장으로 역풍을 맞았다. 1989년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톈안먼(天安門) 사태 직후 계엄군을 위문하는 자리에서 노래하는 사진이 공개된 것이다. 톈안먼 사태는 중국인에게 채 아물지 않은 상처다. 살아 있는 권력이어서일까? 여론은 그나마 펑리위안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상명하복이 엄격한 군에 소속된 신분이라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중요한 것은 향후 그녀의 행동이라는 데 많은 이가 공감했다.

중국 보수파 사이에서는 펑리위안의 화려한 광채가 시 주석을 가리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래서인지 웨이보(중국 SNS)의 '국모 팬클럽' 블로그가 폐쇄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샤먼 대학에 다니는 블로그 운영자(28세)는 최근 홍콩 언론 <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 와 인터뷰하면서 "'국모'란 표현이 검열관들의 심기를 거슬렸던 것 같다"라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