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달송 삶★

'소주 반병 · 해진 이불 없으면 죽은 목숨…'

별고을 동재 2008. 1. 17. 16:47

'소주 반병 · 해진 이불 없으면 죽은 목숨…'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면서 노숙자들이 동사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올해는 노숙인들이 지냈던 부산역마저 폐쇄되고, 응급 잠자리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으면서 노숙인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소주로 체온 데우는 노숙자들

16일 오후 동구 부산역 앞 광장.

IMF 이후 올해로 10년째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일명 '오서방'이 주위에 있는 후배 노숙인들을 불러 모아 소주판을 벌인다.

안주는 인근 식당에서 얻어온 김치국밥 한 그릇.

숟가락 2개로 다섯 명이 나눠 먹기 시작한 지 1분도 채 안 돼 국밥은 바닥을 드러낸다.

벌써 소주 6병째.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술에 취하지 않으면 뼛속을 파고드는 칼바람 탓에 잠을 이룰 수 없다.

오 씨(56)는 "술에 취해 지하도에서 자면 거의 목숨을 반쯤 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노숙자들이 간경화와 폐결핵 등 기본적으로 질병 두세 개씩 앓고 있기 때문에 겨울철 갑자기 세상을 뜨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저녁먹고 잠든 동료… 아침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기도

술잔이 한두 잔 오가면서 지난 5일, 수정산 기슭에서 죽은 채 발견된 일명 '석이'라는 노숙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차라리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지하도에서 잤으면 죽어도 빨리 발견될 텐데 라는 아쉬움에서부터, 언제 자신에게도 닥칠 지 모르는 공포 탓에 눈가는 이내 젖어든다.

3년째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이 모(43) 씨는 "아무리 부산이 따뜻하다고 해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정신을 놓는 순간 저승으로 가는 것"이라며 "요즘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되도록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지하상가나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잠자리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석이'(31)라는 사내는 지난 5일 오후 3시쯤, 동구 수정산 기슭에서 얇은 이불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에 앞선 지난 3일, 영도구 봉래동 길가에서 잠든 김 모(50) 씨가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는 등 올 겨울들어 노숙자 4명이 추위로 숨졌다.

▶지붕있는 쉼터 생활 '답답'

사람들은 노숙자들에게 왜 쉼터로 들어가지 않느냐고 다그치지만, 이제 거리 생활에 익숙해져 지붕이 있는 곳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고욕이다.

노숙생활 4년차인 김 모(36) 여인은 "쉼터에서는 새벽 6시에 일어나고, 밤 10시에는 무조건 자야 한다"며 "예배같은 종교활동을 해야 밥을 주는데 그런 답답한 생활을 견딜 노숙자가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반문했다.

동료 박 모(37) 씨도 "쉼터에서 노숙자들에게 소개해주는 일자리는 거의 3D 업종뿐인데, 일반인이 그런일을 하기 싫어하듯 우리도 마찬가지"라며 "특히 항상 술을 끼고 살아온 사람들한테 이렇다할 재활 프로그램없이 무조건 술을 끓으라고 강요하니 다들 하루를 못 버티고 쉼터를 나온다"고 말했다.

쉼터를 떠나 다시 거리로 나온 노숙인들은 교회, 성당 등을 돌며 천 원 상당의 구제금을 받는 속칭 '꼬지'활동으로 하루 오천 원 정도의 용돈을 마련한다.

▶겨울철 노숙자 남하 현상…노숙자, 쪽방 거주자 모두 천여 명

부산역, 서면지하철 상가, 연안여객부두 등 부산노숙인상담보호센터가 파악한 거리 노숙인은 160여 명.

여기다 쉼터 노숙자와 쪽방 거주자까지 합치면 노숙자들은 모두 천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겨울철이 되면 노숙자들이 따뜻한 부산으로 이동하는 '남하' 현상이 벌어지면서 거리 노숙자들은 다른 계절보다 40% 정도 증가한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응급잠자리는 전혀 없는 실정.

그동안 노숙자들의 잠자리로 이용됐던 부산역이 지난해 2월 폐쇄되면서 부산시는 대체 응급 잠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1년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계획조차 없는 상황이다.

임시방편으로 일선 구청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구청시설을 노숙자들에게 개방하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이를 모르는 구청이 대부분이다.

A 구청 관계자는 "공문이 오긴 왔는데 밤새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노숙자들이 먼저 알고 찾아오는 경우도 없어서 개방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지역에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가 6곳 있지만, 엄격한 규율 탓에 하루 이틀 머물다뛰쳐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쉼터측도 여러가지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노숙자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싶지만, 난방비 대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부산노숙인상담센터 안정옥 센터장은 "노숙자시설이 24시간 생활시설임에도 불구하고 허가가 이용시설로 돼 있어서 다른 구호 기관과 달리 난방비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며 "노숙자 관련 법안도 2년 동안 국회에 표류하고 있는데다, 정부의 지원금까지 줄어들고 있어 식비 마련하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내부 사정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