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변에 영화 촬영지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군데군데 서 있다. < 명량 > 열풍을 실감게 한다. 먼저 찾아간 곳은 해남 우수영(右水營). 전라우도의 수군 본부가 있던 곳이다. '수영'은 조선시대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였다. 이 영내에서 수군과 마을주민이 생활을 했다.
당시 전라우수영은 해남과 진도를 비롯 나주와 영광, 함평, 무안, 영암까지 관할했다. 어란진, 고금도, 신지도, 목포진, 법성포, 흑산도 등 19곳을 속진으로 뒀다. 성은 남북으로 10리, 동서 5리에 이르렀다. 석축의 둘레는 3843척으로 1100m를 넘었다. 장대한 성이었다.
망해루에서 가까운 곳에 명량대첩비도 있다. 마을의 암반에 서 있다. 명량대첩을 기념해 숙종 14년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수난을 겪었다.
"여그가 바닷가였어. 간척하기 전까지. 이 비석도 옛날부터 여그에 있었고. 동문 앞이었제. 우리 어렸을 때는 연도 띄우고 놀았던 곳이여. 그때 일본놈들이 이 비석을 강제로 뜯어가 불었어. 사람들을 동원해갖고.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그만, 그때가. 그것을 다시 돌려놓은 거여. 여그다가."
명량대첩비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는 문남렬(88) 할아버지의 얘기다.
당시 수군들이 먹는 물로 이용했다는 우물 방죽샘과 '무소유'의 저자 법정스님의 생가를 보고 우수영항으로 간다. 포구에 거북선을 본뜬 유람선과 전시용 판옥선이 닻을 내리고 있다. 자물쇠가 채워진 탓에 겉모습만 보고 발걸음을 돌린다.
우수영항에서 나와 해변데크를 따라 울돌목으로 간다. 회오리치는 바다를 보러간다는 생각에 마음도 가볍다. 왼편으로 충무사가 보인다. 입구에 우수영의 관리와 수군의 송덕비가 모여 있다. 충무사에서는 충무공 탄신인 봄과 명량대첩 기념일인 가을에 제례를 지내고 있다.
울돌목이다. 매표소를 지나 물살 체험장으로 가는데 솨아-솨아- 소리가 귓전을 간질인다. 귀를 기울였더니 물살이 내는 소리다. 급류가 서로 부딪혀 울면서 소리를 낸다(鳴梁)는 걸 실감케 한다. 바닷물의 흐름이 세고 거칠다.
조류가 최대 유속 11.6노트에 이른다. 조수간만의 차가 작은 조금 때는 시속 10㎞, 빠른 사리 때는 20㎞쯤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물살이 가장 빠른 곳이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스펙터클했던 영화 속의 전투장면도 떠오른다.
둥- 둥- 둥- 북소리와 함께 이순신 장군의 진격 명령이 들리는 듯하다. 한참 동안 영화 속의 장면으로 빠져들었다.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10배도 넘는 왜군의 무리를 무찔렀던 그 바다를 보면서.
우수영 수변공원에는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가 새겨진 이충무공 어록비가 보인다.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는 의미다. 죽기로 싸우면 살고, 살려고 비겁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뜻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란 절규도 새겨져 있다. 왜선을 유인해 침몰시키는데 쓰였던 쇠사슬 감기틀도 보인다.
전망대에서 연결되는 명량대첩 유물전시관에선 거북선과 판옥선의 모형을 만난다. 당시 쓰였던 천자총통 등 무기도 전시돼 있다.
우수영관광지에서 나와 진도대교를 건넌다. 30년 전 진도를 뭍으로 만들어 준 다리다.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를 잇고 있다.
녹진전망대에서도 울돌목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바다 가운데서 거세게 이는 물살도 선명하다. 우수영을 배경으로 들어선 진도대교도 위용을 뽐낸다. 올망졸망 떠 있는 다도해 풍광도 한 폭의 넉넉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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