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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 "진군하라- 한 명도 남김없이 쓸어버려라"

별고을 동재 2014. 8. 28. 15:58


 

영화 '명량'의 배경인 울돌목. 바닷물이 거칠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이곳의 거센 물살을 이용해 왜군의 무리를 무찔렀다.

ⓒ 이돈삼

영화 < 명량 > 돌풍이 거세다. 국민영화라는 찬사를 받으며 이순신 열풍까지 일으키고 있다. 역사적인 명량대첩의 현장을 보려는 사람들의 발길도 줄을 잇고 있다. 그 행렬에 끼어 울돌목으로 간다. 지난 20일이다.

도로변에 영화 촬영지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군데군데 서 있다. < 명량 > 열풍을 실감게 한다. 먼저 찾아간 곳은 해남 우수영(右水營). 전라우도의 수군 본부가 있던 곳이다. '수영'은 조선시대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였다. 이 영내에서 수군과 마을주민이 생활을 했다.

당시 전라우수영은 해남과 진도를 비롯 나주와 영광, 함평, 무안, 영암까지 관할했다. 어란진, 고금도, 신지도, 목포진, 법성포, 흑산도 등 19곳을 속진으로 뒀다. 성은 남북으로 10리, 동서 5리에 이르렀다. 석축의 둘레는 3843척으로 1100m를 넘었다. 장대한 성이었다.



우수영 망해루. 옛 우수영의 성터에 복원돼 있는 망루다.

ⓒ 이돈삼



문남렬 할아버지. 명량대첩비 앞에서 비에 얽힌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 이돈삼

옛 문내면사무소 자리가 동헌 터였다. 성의 북문이 있었던 망해루(望海樓) 부근에서 성벽의 흔적을 만난다. 바닷가에 접한 남쪽은 크고 작은 돌로 쌓았다. 북쪽은 흙으로 빈틈없이 쌓아올렸다.

망해루에서 가까운 곳에 명량대첩비도 있다. 마을의 암반에 서 있다. 명량대첩을 기념해 숙종 14년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수난을 겪었다.

"여그가 바닷가였어. 간척하기 전까지. 이 비석도 옛날부터 여그에 있었고. 동문 앞이었제. 우리 어렸을 때는 연도 띄우고 놀았던 곳이여. 그때 일본놈들이 이 비석을 강제로 뜯어가 불었어. 사람들을 동원해갖고.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그만, 그때가. 그것을 다시 돌려놓은 거여. 여그다가."

명량대첩비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는 문남렬(88) 할아버지의 얘기다.



명량대첩비를 찾은 여행객들. 영화 '명량'을 보고 온 외지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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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영의 수군과 관리의 송덕비. 충무사 입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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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씩 설명을 해주었다.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에 따라 1942년 이 비가 강제로 뜯겨졌다. 일본으로 가져가려다가 실패하고 한양의 경복궁 근정전 뒤뜰에 버렸다. 해방 뒤 주민들이 충무사로 옮겨왔고, 3년 전에 다시 이 자리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당시 수군들이 먹는 물로 이용했다는 우물 방죽샘과 '무소유'의 저자 법정스님의 생가를 보고 우수영항으로 간다. 포구에 거북선을 본뜬 유람선과 전시용 판옥선이 닻을 내리고 있다. 자물쇠가 채워진 탓에 겉모습만 보고 발걸음을 돌린다.

우수영항에서 나와 해변데크를 따라 울돌목으로 간다. 회오리치는 바다를 보러간다는 생각에 마음도 가볍다. 왼편으로 충무사가 보인다. 입구에 우수영의 관리와 수군의 송덕비가 모여 있다. 충무사에서는 충무공 탄신인 봄과 명량대첩 기념일인 가을에 제례를 지내고 있다.



우수영 관광지. 진도대교 아래 울돌목의 물살 체험장으로 가는 길이다.

ⓒ 이돈삼



진도대교 아래 울돌목의 거센 물살. 물의 흐름이 눈에 보일 정도로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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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사에 들렀다가 우수영관광지로 간다. 옛 관리사무소 뒤편으로 명량대첩 기념전시관 공사가 한창이다. 80억 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8층 규모로 짓고 있다. 주차장이 꽉 찼다. 체험마당에도 사람들로 북적댄다. 영화를 보고 찾아온 외지인들이 대부분이다.

울돌목이다. 매표소를 지나 물살 체험장으로 가는데 솨아-솨아- 소리가 귓전을 간질인다. 귀를 기울였더니 물살이 내는 소리다. 급류가 서로 부딪혀 울면서 소리를 낸다(鳴梁)는 걸 실감케 한다. 바닷물의 흐름이 세고 거칠다.

조류가 최대 유속 11.6노트에 이른다. 조수간만의 차가 작은 조금 때는 시속 10㎞, 빠른 사리 때는 20㎞쯤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물살이 가장 빠른 곳이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스펙터클했던 영화 속의 전투장면도 떠오른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재현. 지난해 10월 전라남도가 주관한 명량대첩축제 때 재현한 해상전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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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 어록비. '약무호남 시무국가'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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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수병들이여! 진군하라- 진군하라- 한 명도 남김없이 쓸어버려라!"

둥- 둥- 둥- 북소리와 함께 이순신 장군의 진격 명령이 들리는 듯하다. 한참 동안 영화 속의 장면으로 빠져들었다.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10배도 넘는 왜군의 무리를 무찔렀던 그 바다를 보면서.

우수영 수변공원에는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가 새겨진 이충무공 어록비가 보인다.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는 의미다. 죽기로 싸우면 살고, 살려고 비겁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뜻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란 절규도 새겨져 있다. 왜선을 유인해 침몰시키는데 쓰였던 쇠사슬 감기틀도 보인다.



우수영관광지의 해안데크. 해안을 따라 거닐며 울돌목의 물살과 풍광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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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영전망대에서 본 울돌목과 진도대교 풍경. 건너편 전망대가 진도타워가 세워진 녹진전망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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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 감기틀을 돌려보고 해안데크를 따라가니 산길로 접어든다. 우수영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둘이서 나란히 걸을 정도로 넓다. 숲길은 한적하다. 전망대에 서니 울돌목과 진도대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바닷바람도 선선하다. 계절의 변화가 묻어난다.

전망대에서 연결되는 명량대첩 유물전시관에선 거북선과 판옥선의 모형을 만난다. 당시 쓰였던 천자총통 등 무기도 전시돼 있다.

우수영관광지에서 나와 진도대교를 건넌다. 30년 전 진도를 뭍으로 만들어 준 다리다.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와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를 잇고 있다.



녹진관광지의 승전공원. 울돌목의 이순신장군 동상 앞으로 해안데크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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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진관광지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 높이 30미터로 국내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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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녹진관광지의 승전공원에도 해안을 따라 나무데크가 놓여있다. 우수영에서 본 풍경과는 또 다른, 색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국내에서 가장 크다는 이순신 장군 동상도 서 있다. 큰 칼을 손에 들고 울돌목을 호령하고 있다. 해안가의 산책로도 다소곳하다.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걷기 좋다.

녹진전망대에서도 울돌목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바다 가운데서 거세게 이는 물살도 선명하다. 우수영을 배경으로 들어선 진도대교도 위용을 뽐낸다. 올망졸망 떠 있는 다도해 풍광도 한 폭의 넉넉한 그림이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상징하는 조형물. 진도타워 앞 녹진전망대에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