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의 조카인 윤주 매헌연구원 연구위원이 25일 서울 양재동 매헌기념관에서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이 1970년대 윤 의사 유족에게 우편으로 보내준 ‘장렬천추(壯烈千秋)’라는 휘호를 들고 있다. 윤 위원은 이날 ‘국기 아래의 윤봉길 의사’라는 한시도 함께 공개했다(위쪽 작은 사진). [김형수 기자]
윤 의사의 조카이자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부회장인 윤주(66) 매헌연구원 연구위원은 25일 본지에 3점의 자료를 공개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4행 26자로 구성된 ‘국기 아래의 윤봉길 의사(國旗下之尹奉吉義士)’라는 제목의 한시. 31년 당시 한인애국단을 이끌던 김구 선생을 찾아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윤 의사가 이듬해인 32년 4월 29일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 공원에서 도시락에 숨긴 폭탄을 투척해 당시 중국 주둔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대장 등을 척살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시 중국의 지도자였던 장제스가 윤 의사의 폭탄 투척 의거 소식을 전해 듣고 “중국의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탄복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이 한시를 감수한 서울대 중문과 허성도 교수는 “장제스의 극찬처럼 당시 윤 의사의 의거를 높게 평가했던 중국인들의 보편적 평가가 한시에서는 ‘(조선에는) 군자가 많다 해도 3000만인데 우리 4억 중국인을 부끄럽게 하는구나’라고 시적으로 잘 표현됐다”고 풀이했다. 허 교수는 “윤 의사 의거를 계기로 장제스가 김구 주석의 면담에 응하고 임시정부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윤 의사 의거 이전인 31년 7월 2일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에서 일제의 술책으로 조선인과 중국인 농민이 유혈 충돌한 만보산 사건 때문에 중국인들의 조선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고, 심지어 “조선인은 일제의 앞잡이”라고 오해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윤 의사 의거를 계기로 중국 지도자뿐 아니라 일반 중국인들의 조선에 대한 감정이 개선됐고 조선과 중국이 항일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역사학계는 보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한시의 배경이 된 사진은 윤 의사가 의거를 앞두고 상하이에서 마지막으로 촬영한 3장의 사진 중 한 장이다. 당시 윤 의사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독사진을 한 장 찍었고, 가슴에 선서문을 부착한 채 권총과 폭탄을 들고 독사진을 찍었다. 또 김구 주석과도 한 장을 따로 찍었다.
한시가 이 사진 바탕에 실린 배경에 대해 윤 연구위원은 “의거 이후 김구 주석이 ‘도해실기’를 펴내면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중국인의 한시를 받아 사진 위에 글귀를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병섭 인하대 명예교수는 “독립기념관에 보관된 ‘도해실기’에서 윤 의사 사진을 찾아내 지난해 ‘매헌전집’에 실었지만 당시 한시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며 “이번에 재조명을 받음으로써 누가 이 시를 썼는지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연구위원은 이날 장제스가 70년대 윤 의사 유족에게 보내 온 친필 휘호 2점 중 그동안 매헌기념관이 소장해 온 것과 일부 글자가 다른 ‘장렬천추(壯烈千秋)’란 휘호도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