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이야기

최혜정 "난 거북이..오래도록 살아남겠다"

별고을 동재 2015. 11. 17. 13:47

시드전 5전6기에 하위권 전전…"긍정의 힘으로 버텼다"

웨이트트레이닝 '열심'…내년엔 2승 목표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올해 장편 영화 한 편 찍은 기분이네요."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가 배출한 스타 가운데 으뜸은 한국·미국·일본 3개국 메이저대회를 석권한 전인지(21·하이트진로)이다. '미생'에서 어느덧 최고 스타로 발돋움한 '장타 여왕' 박성현(22·넵스)도 올해 KLPGA 투어가 낳은 스타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시즌 마지막 대회 조선일보-포스코챔피언십 우승자 최혜정(24)보다 더한 극적 반전의 신데렐라는 없다.

최혜정은 KLPGA투어 정규 대회 출전권을 부여하는 시드전에 5번이나 낙방해 6번 만에 꼴찌로 합격증을 손에 쥐었다. 18살 때부터 매년 시드전에 응시한 끝에 23살이던 작년에야 시드권을 받아 24살에 신인으로 데뷔했다. 시드전 순위는 사실상 꼴찌나 다름없는 60위였다.

대여섯살 아래 동생들과 맞은 루키 시즌도 힘겹기만 했다. 9월 YTN·볼빅여자오픈까지 치렀을 때 상금랭킹은 85위. 내년 시드를 지킬 가능성이 까마득해보였다. 19개 대회에 출전해 9개 대회에서 컷오프, 또는 기권으로 상금을 받지 못했다. 컷을 통과한 대회도 하위권이라 대회 출전 경비를 빼면 남는 게 없는 쥐꼬리 상금에 불과했다.

앞날이 캄캄하기만 했던 최혜정은 10월 OK저축은행 박세리인비테이셔널 대회부터 거짓말 같은 '인생 역전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최종 라운드 5언더파 67타를 쳐 5위를 차지했다. 생애 첫 '톱10' 입상으로 2천400만원이라는 '거금'을 챙긴 최혜정은 상금순위를 68위로 끌어올렸다. 이어 KB금융스타챔피언십 17위, 서울경제·문영 퀸즈파크 레이디스 클래식 26위를 차지한 최혜정은 상금순위 59위까지 올라섰다.

내년 시드를 주는 60위 이내에 진입해 가장 큰 숙제를 해결했다. 서울경제·문영 퀸즈파크 레이디스 클래식에는 원래 출전 자격이 없었는데 앞 순위 선수 한명이 출전을 포기하면서 생긴 기회가 복이 됐다.

덕분에 상금순위 60위 이내 선수만 출전할 수 있는 ADT캡스챔피언십에 출전할 수 있었다. 막판에 합류한 이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해 상금랭킹 55위로 올라섰다.

역시 상금랭킹 60위 이내 선수에게만 출전이 허용되는 시즌 최종전 조선일보-포스코챔피언십 출전 자격을 딴 그는 이 대회에서 꿈에 그리던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OK저축은행·박세리인비테이셔널 최종일인 10월4일부터 조선일보-포스코챔피언십에서 우승한 11월15일까지 한달 보름 사이에 재투성이 신데렐라가 우아한 여왕님으로 변신한 셈이다.

최혜정은 "10월부터 일어난 모든 일이 마치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찍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고 표현했다.

특히 시즌 막판 2개 대회에서 일어난 일은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우승 직후 "꿈꿔 왔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던 최혜정은 하루가 지나서도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우승의 기쁨과 감격은 더없이 크다. "난생 이렇게 많은 전화와 문자, 카톡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할 땐 목소리 톤이 한 계단 올라갔다.

형편없는 하위권 선수가 한달 보름 사이에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었냐고 묻자 최혜정은 "원래 모든 게 늦는 편"이라고 밝혔다. '열등생 거북이' 스타일이라는 부연 설명이다.

어릴 땐 키도 작았단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 최창수(60) 씨 손에 이끌려 골프를 시작했지만 변변한 성적이 없어 국가대표 상비군에도 뽑히지 못했다.

2009년 프로가 됐지만 투어에서 뛸 수 있는 자격을 얻는데만 5년이 걸렸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다친 왼쪽 발목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21살 때 인대가 다 끊어져 접합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는 프로 6년차지만 친하게 지낸 선수가 없다. 또래들은 정규 투어에서 뛰고 있었고 한참 동생뻘인 2부 투어 선수들과는 아무래도 친해지기 어려웠다.

"거의 인간관계가 없었다. 그저 공만 치러 다녔다"는 그는 "올해 정규 투어에 올라와서도 다른 선수들과 어울릴 여유가 없었다"고 입맛을 다셨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명색이 프로 선수지만 골프채를 제 돈을 내고 구입해야 했다. 다행히 작년부터 캘러웨이가 클럽을 지원해줬다. 타이틀리스트는 장갑과 볼, 신발을 대줬다. 무엇보다 고등학생 때부터 연습 시설을 제공한 보광 휘닉스파크 덕에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최혜정은 이런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긍정의 힘'이었다고 힘줘 말했다.

"나도 언젠가는 해낼 수 있다고 나 자신을 믿었기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참고 이겨낼 수 있었다"는 최혜정은 지난가을까지 성적이 형편없었던 것은 "그런 나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상실하고 의욕이 꺾였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패닉 상태'와 '멘탈 붕괴'의 시기였다고 했다.

'다시는 시드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과 자신에 대한 압박에 어쩔 줄 몰라하면서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지난 7월 어느 날 심리 상담을 받았고 두 시간이 넘도록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나니 그토록 마음을 짓누르던 부담과 압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최혜정은 설명했다.

'긍정의 힘'을 느끼기 시작하니 샷이 확 달라졌다. 그는 특별한 장기가 없는 선수다. 반면에 특별한 약점도 없다. 최혜정은 "나쁠 땐 드라이버, 아이언, 쇼트게임, 퍼트가 다 나빠지고 좋아질 때는 다 좋아진다"고 말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탈출한 한달 보름 동안 최혜정은 정상급 선수 못지않은 샷을 뽐냈다. 조선일보-포스코챔피언십 때 그린 적중률 87.04%에 라운드 당 28개의 퍼팅이라는 최고의 실력을 과시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투어 대회 최종 라운드 챔피언조 경기에서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4언더파 68타를 쳐냈다.

최혜경은 "그냥 후회없는 경기를 하자고 마음먹었더니 부담이 크지 않았다"고 밝혔다.

시즌 막판 부친 최 씨 대신 백을 매기 시작한 캐디의 도움도 적지 않았다. 이동할 때면 농담을 걸어 긴장을 풀어줬다.

최혜정은 170㎝의 키에 탄탄한 하체 근육을 갖춘 균형 잡힌 몸매를 지녔다. 그는 "타고난 게 아니라 내가 만든 체격"이라고 공개했다. 그는 웨이트 트레이닝 신봉자다. 재활을 하면서 웨이트 트레이닝의 효과와 중요성에 눈을 떠 겨울 훈련 때면 집중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달렸다.

작년부터는 시즌 중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르지 않는다. 올가을에 눈부신 성적을 거둔 것도 이렇게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다진 체력이 바탕이 됐다는 자평이다.

최혜정이 웨이트 트레이닝에 매달리는 이유는 또 있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 투어에서 우승 경쟁을 하는 선수로 오래오래 뛰는 게 가장 큰 소망"이라는 최혜정은 "늦은 만큼 롱런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선수들이 주름잡는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에서 서른이 넘어서도 우승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각오를 현실로 만들려면 체력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로고가 없는 민짜 모자를 쓴 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최혜정은 "좋은 후원자를 만나고 싶다"면서 "올겨울 전지훈련에서는 쇼트게임을 집중적으로 연마해 내년에는 2승 이상을 올리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우승 인터뷰에서 내년 목표로 상금왕이라고 말한 것은 "얼떨결에 나온 말인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좀 과한 것 같았다"는 최혜정은 "뭐 그래도 목표는 높게 잡는 게 좋지 않으냐"고 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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