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미국의 닉슨 대통령 하야를 불러왔던 워터게이트 사건과 여러모로 닮아 있습니다. 역사의 복기를 통해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상황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 놓치고 있는 지점들을 2회에 걸쳐 살펴봅니다.
①5가지 공통점
②100만 촛불을 위한 제안
[더피알=김성해] 닉슨은 항복한 것이지 자발적으로 물러나지 않았다. 포드 대통령이 사면을 단행한 것 역시 탄핵을 당할 경우 자신도 철창에 갇힐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펜타곤페이퍼를 시작으로 워터게이트에 대한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도 큰 역할을 했다. 국민은 각종 정황과 증거를 앞에 두고도 거짓말을 하는 닉슨에게 환멸을 느꼈다. 법무장관, FBI국장대리, CIA 등이 줄줄이 법정에서 유죄를 받으면서 제도에 대한 불신도 극에 달했다.
▲ 닉슨 하야를 보도한 1974년 8월 9일자 뉴욕타임스 1면. |
다행히 ‘견제와 균형’이라는 시스템이 작동했다. 법원은 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했다. 국익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 정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헌법 파괴를 막기 위해 양심적으로 행동한 공무원도 많았다. ‘딥 스로트’(Deep Throat)로 불린 FBI 부국장이 그랬고 랜드재단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펜타곤의 비리를 고발했던 엘스버그도 있었다.
또한 특별검사로 임명된 콕스는 닉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법도청 자료의 제출을 과감하게 요구했다. 특검을 해임하라는 압력에 맞서 법무장관과 차관도 사표를 제출했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사주와 기자들 역시 한국과 달리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다. 당시 사건을 둘러싼 의혹은 남김없이 드러났고 관련자들은 처벌을 받았다. 정치는 보다 투명해졌으며 ‘진솔하지 못한’ 정치인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도 보여줬다.
그렇다면 당시와 비교했을 때 2016년 현재 부족한 부분은 무엇일까? 닮은 점이 많다면 몇 가지 중요한 지점을 찾아낼 수 있다.
첫째, 국민이 분노하고 하야를 선언한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 자체가 아니었다. 절대군주가 된 것처럼 본인은 법 위에 존재한다는 것에 분노했다. 불법을 저지른 것을 넘어서 이를 은폐하고, 정직한 사람을 겁박하고, 시스템을 ‘오염’시킨 것에 절망했다. 법무부, FBI, CIA, 펜타곤 등 국가의 핵심 권력기관에 대한 신뢰를 망가뜨렸다는 점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은 이와 달리 ‘잘못된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검찰에서 적용하는 죄목만 해도 ‘뇌물죄, 공무상비밀누설죄’ 등이다. 미국은 이와 달리 ‘사법방해죄, 위증죄, 모의죄’ 등을 적용했다.
게다가 국내에는 ‘헌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별법’이 엄연히 존재한다. 제1조에는 “헌법의 존립을 해치거나 헌정질서의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헌정질서 파괴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의 배제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헌법상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함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목적이 명시돼 있다. 검찰과 국회 청문회의 방향을 이쪽으로 전환해야 한다.
▲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에 몰려든 100만 촛불. 뉴시스 |
둘째, 대통령의 혐의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특별검사나 청문회를 통해서만 비로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100만 촛불시위는 이런 노력이 제대로 지속될 수 있도록 감시해야 한다. 국회 또한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청문회를 속히 열어야 한다. 국회라는 공개된 광장을 통해 관련자들은 보복의 두려움 없이 진실을 밝힐 수 있다. 자칫하면 위증죄로 구속될 수 있다는 채찍은 물론 단순 가담자나 소극적 협력자에 대한 사면이 전제될 때 실체는 드러난다.
셋째,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인물은 모두 고위직이었다. 홀드만은 비서실장이었다. 권력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모를 수 없다는 점에서 당연하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깊숙이 개입했을 개연성이 아주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무장관 미첼 역시 최고 30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검찰 조사를 지휘할 수 있는 인물이 은폐의 주역이라는 의심도 당연하다.
한국에서 관련 의혹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황교안 국무총리로 2014년 정윤회 사건 때 그는 법무장관이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조사를 총괄한 이후 승진한 김수남 검찰총장도 조사해야 한다. CIA 역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측면에서 남재준 국정원장도 예외가 아니다. 최순실 사건은 명확하지 않지만 국정원 ‘불법선거’와 ‘은폐’ 의혹의 핵심 인물이다.
넷째,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닉슨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은 자의적으로 물러날 가능성이 없다. 100만 촛불시위도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본인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헌정파괴’라는 관점에서 거부할 수 없는 사실관계가 확보되지 않으면 곧바로 ‘정치공세’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서 ‘퇴진’을 강요받을 경우 정쟁의 희생양이라는 오해도 생긴다. 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가 불신 받는 상황에선 검찰이 어떤 결과를 내놓아도 의혹은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개성공단 폐쇄, 사드배치, 한일군사협정 등 중요한 대외정책의 실패를 감안할 때 직무를 그대로 수행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민적 합의를 통해 전면적으로 재검토를 한 다음 집행될 수 있도록 잠정적으로 유예하는 것이 방법이다. 당연히 국내의 각종 폐해를 바로잡기 위한 조치도 필요하다. 박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것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김두식 교수나 금창섭 의원 등이 지적하는 것처럼 ‘탄핵’ 절차를 제대로 밟아가는 것이 더 시급하다. 대법원에서 기각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지금은 그나마 남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지켜야 할 순간이다. 죽은 줄 알았던 언론이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검찰도, 법원도, 공무원 사회도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시대의 아버지를 원한다
닉슨 하야를 둘러싼 일련의 전개과정을 잘 살펴보면 국내 상황에 대한 추측도 가능하다. 1961년 ‘뉴프론티어’를 내세웠던 존 F. 케네디는 노무현과 유사하다. 인권변호사면서 주류에 저항했다는 점도 그렇고 대외정책에서도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열광하는 국민이 있지만 못내 불안하게 본 사람도 있다. 암살과 자살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었던 존 F. 케네디(왼쪽)와 리처드 닉슨. 위키피디아 |
그럼에도 그의 후임자들은 국가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부족한 점이 많았다.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 전쟁, 인플레이션, 포퓰리즘으로까지 불릴 수 있는 과도한 복지정책 등은 부채였다.
미국에 대한 자긍심 또는 애국심을 훼손한 것도 오류다. 닉슨은 미국 중산층과 서민이 갖고 있는 이러한 불만에 주목했다. 물론 속전속결이라는 군사적 전략에 따라 베트남 전쟁을 확대시킨 책임은 있지만 군인답게 물러날 때를 알았다. 전쟁 대신 평화를 가져왔고 1970년대의 데탕트를 주도했다. 10억에 가까운 인구를 가진 중국과 영원히 적대적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로 현실감각도 있었다. 권력은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는 말처럼 ‘본인이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교만을 이기지 못한 것이 단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배경은 닉슨과 비슷한 면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한국 경제의 체질 변화와 무관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 상대적 박탈감을 키웠다. 정리해고와 계약직 노동자의 확대는 전반적인 직업불안으로 이어졌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의 틈새에서 치밀한 준비 없이 진행되었던 노무현 정부의 대외정책은 불안감을 조성했다.
경제적 성장과 일상생활에서 질서와 안정이 갖는 중요성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보다 강력한 리더, 국민에게 쓴 소리도 할 수 있는 리더,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는 리더에 대한 목마름을 놓쳤다.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약속했지만 ‘한풀이’를 한다는 인상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이런 배경에서 당선됐지만 결과는 비참하다. 과도기로 인해 혼돈스러운 면은 있어도 헌법 정신은 유지됐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박 대통령의 탄핵 또는 하야는 불가피하다.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면 탄핵이라는 정상적인 절차가 더 바람직하다. 불행은 일찍부터 예견됐다. 우선 정통성이 부족했다. 박정희라는 좋은 유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국정원, 경찰과 군대의 대선개입은 치명적이었다.
본인의 장점이었던 원칙 역시 이중잣대라는 것이 드러났다. 부친과 달리 인재를 널리 고르게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도 거듭 확인됐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럽고 비효율적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충고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했고 그 결과는 항상 초라했다.
정치적 고향이었던 대구에서도 비난 받았던 ‘속좁음’과 ‘편견’도 문제였다. 정치는 살아있는 동물이라는 것을 외면한 채 자기만 옳다는 독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박근혜로 대표되는 이 특징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명문가의 ‘공주’가 아닌 중산층 출신의 ‘아버지’라고 보면 된다.
지난 3월 끝난 <시그널>이란 드라마가 있다. 극중에서 조진웅은 이 시대가 원하는 아버지상을 잘 보여줬다. 책임감, 능력, 배려, 따뜻하면서도 엄한 모습을 두루 갖췄다. 박 대통령에 실망한 국민이 열광할 만했다. 험난한 시대를 맞아 우리는 누구나 아버지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희망한다. 내가 잘못해도, 좀 못나도, 좀 실수를 해도, 넉넉하게 안아주고 다시 추스르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존재다.
모든 것을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기 보다는 잘못은 지적하고, 때로는 손찌검도 하는, 그러면서 함께 고난을 헤쳐 가는 유형이다. 가족을 위해서는 창피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세상과 두루 섞일 줄도 아는 사람이다. 열정적으로 일할 만큼은 젊어야 하고, 진정성을 느낄 수 있고, 사람 냄새가 나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품으로는 훌륭했던 지미 카터가 연임에 실패한 것에서 보듯 지도자로서의 역량이 없다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도 등을 돌렸다. 지난 19일 제3차 대구 시국대회 현장. 뉴시스 |
2016년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자질은 과연 무엇일까?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특징은 지적할 수 있다.
첫째,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당장 최근 사태의 핵심은 ‘국정농단’ 보다는 ‘헌법질서 파괴범죄’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헌법에 규정된 조항을 누가 어떻게 어겼는지를 명확하게 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정치적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특검과 청문회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한편으로, 헌법 정신을 훼손하게 된 원인을 이번 기회에 바로잡아야 한다. 대선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이 부분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결국 국민의 버림을 받게 된다. 무너진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복원시키는 것이 우선순위여야 한다.
2002년 월드컵에서 히딩크는 한국 축구를 4강에 올렸다. 그 이후 어떤 감독도 이 정도의 성적은 얻지 못한다. 반드시 한국 사람이 감독을 해야 한다는 통념이 없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냉정하게 말할 때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생명과 재산의 위협을 받지 않고, 즐기면서 일할 수 있는 직장과, 안락한 일상을 보장받는다면 누가 지도자가 되든 상관이 없다. 능력껏 대접받고,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고, 게임의 규칙이 공정하게 적용된다면 굳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크게 없다. 광화문 광장에서 김제동씨가 말했던 것처럼 ‘헌법’에 나와 있는 것만 제대로 지켜지면 된다는 의미다. 닉슨과 박근혜는 이 부분에서 실패했고 그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을 제대로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머리는 빌리면 된다”고 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이 점을 간과했다. “반미 좀 하면 어때”라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 또한 이런 역량에서는 낙제점이었다. 1980년 정권을 잡은 로널드 레이건은 이 점에서 평가할 만한 부분이 있다.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그는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에서 준비한 ‘리더를 위한 필독서’(Mandatory For Leadership)를 인수위 참가자들과 함께 논의했다. 국방, 경제, 교육과 환경 전 분야에 걸쳐 미국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이 책의 저자들을 정부 관료에 임명했다.
빌 클린턴이 했던 방식도 참고할 만하다. 폴 크루그먼의 증언에 따르면 클린턴은 선거 직후 자신의 별장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했고 이들과 며칠간에 걸쳐 토의를 계속했다. 국방비를 대폭 축소하고, 무역적자 해소 방안을 마련하고, IT 산업 등에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정책 방향은 이 모임을 통해 확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둘째,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리더는 성공할 수 없다.
케네디와 닉슨을 지지했던 국민은 분명 다르지만 미국이라는 국가에서 운명적으로 함께 살아야 한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을지 모르지만 ‘타협’은 불가피하다. 미국과 재벌을 적대시하는 집단과 북한과 노동자를 경멸하는 집단 역시 공존의 대상이다. 적대관계를 일시적으로 화합시키는 것은 ‘공정’하고 ‘신뢰’할 만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중재자를 통해 가능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부분에서 높이 평가받는 인물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는 고통분담을 얘기했고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노동자의 양보를 요구했다. 북한 문제에 접근하기 전에 미국, 러시아, 중국과 일본 등과 충분히 상의했고 그들이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정책을 추진했다. 물론 인사 문제에 있어 그 또한 충분히 공정하지는 못했지만 몇 십 년 동안 누적된 호남의 차별을 감안하면 정상화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박근혜는 이 부분에서 완전한 실패였다. 막대한 정치적 자본을 확보하고 있었으면서도 TK의 양보를 전혀 얻어내지 못했다. 지나치게 기득권의 편에 선다는 느낌을 줬고 그로 인해 불거지는 박탈감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부하 장수를 통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솔선수범에서도 최악이었다. 전쟁터에서 장수는 부하들이 밥을 먹기 전에 먼저 식사를 하지 않는다. 부하들의 잠자리를 모두 확인한 다음에 비로소 잠에 든다. 박 대통령은 정반대로 했다. 세월호 현장과 메르스 현장에 없었다. 지진이 나도 안전한 지를 확인한 다음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박정희와 노무현은 이와 달랐다. 그들은 들판에서 함께 막걸리를 마셨고, 선술집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복장도 소탈했고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주는 데 성공했다.
▲ 험난한 시대를 맞아 우리는 든든한 울타리 같은 리더를 희망한다. 픽사베이 |
셋째, 집단지성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안팎의 도전은 백마 탄 왕자님이 와도 해결할 수 없다.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리더는 오히려 사기꾼이다. 겸손해야 한다. 자신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하고, 인재를 쓸 때는 과감해야 한다. 능력 있는 사람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경계할 수 있어야 한다. 악의적인 잘못이 아닌 경우라고 한다면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의 인사청문회는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문제가 있다. 제대로 된 리더는 따라서 본인이 등용하고자 하는 인물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필요한지, 무엇을 잘 하는지에 대한 설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한번 인재를 선택한 다음에는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지 말고 ‘의무’를 다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유리창을 깨는 것이 겁이나 청소를 하지 않는 오류는 막아야 한다. 과거 로마제국에서 전쟁에 나간 장수에게는 전권을 주고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묻는 대신 설욕의 기회를 준 것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
끝으로, 말로만 국민을 찬양하지 말고 누구나 성숙한 시민정신을 갖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말할 자격을 요구하는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연령이 낮아도, 못 배워도, 직위가 미천해도 인간은 누구나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최근 집회에서도 국민은 결코 개와 돼지가 아니라는 사실은 거듭 확인된다.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과 이제 겨우 10대 중반에 들어선 어린 학생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국민을 믿지 못할 때 닉슨과 박근혜와 같은 오류에 빠진다. 자신만이 똑똑하고 다른 사람들은 선동에 휘둘린다고 확신한다면 자연스럽게 조작하고 가르치고 배제하려고 한다. 노무현 정신은 이 점에서 박근혜와 대척점에 있었다.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패배에 대해 “현장에 나가 직접 만나야 한다”는 충고를 하는 오바마의 발언도 이런 맥락이다.
존 듀이(John Dewey)는 이런 이유로 인간은 누구나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만 주어진다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이런 신념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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