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도 경북의 심장부가 안동 풍천면 갈전리에 새 둥지를 틀었다. 검무산이 '들 바람'을 막아주고, 하회마을을 휘돌아 감아도는 낙동강이 '날 복'을 막아준다.
배산임수(背山臨水) 길지(吉地)인 이곳은 웅도 경북 새로운 천년의 희망을 품고 있다. 35년 끌어온 도청 이전이 종지부를 찍고 검무산 아래 새로운 천년 터로 이전했다.
지난달 12일부터 대구 산격동에서 안동`예천으로 이사를 시작한 경북도는 20일 안동`예천 신청사 이전을 모두 마무리했다. 1314년 고려 충숙왕 원년에 경상도를 개도한 지 702년, 1896년 대구 중구 포정동에 경상북도청을 개청한 지 120년, 1966년 대구 북구 산격동 청사로 이전한 지 50년 만이다. 경북도청의 안동 신청사 시대는 비로소 경북이 고향의 품으로 돌아온 역사가 됐다.
매일신문은 10회에 걸쳐 경상북도 신청사 이전의 의미와 이에 따른 경북 균형발전,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야 했던 북부권 지자체들의 기회 삼기 전략 등을 살펴본다.
◆복된 땅에 새 둥지, 새 출발하는 웅도 경북
지난달 19일, 대구 산격동 청사를 떠나 안동 신청사로 이사해오던 마지막 날 신청사 앞마당에서는 '새 천년 경북시대 개막! 신도청 이사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복된 땅에서 새로운 경북시대의 시작을 300만 도민들께 알립니다"라며 경북의 새 천년을 선포했다.
이날 신청사에는 이른 아침부터 도민들과 23개 시장`군수, 도의원, 도 산하 기관단체장 등 1천5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신도청 이전`입주 고유제(告由祭)를 올리고 액막이 행사를 가졌다.
김 도지사는 "경북도청이 도민의 품으로 돌아와 벅찬 감동을 느낀다. 이제 전 도민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대통합의 시대로 가야 한다. 신도청 시대의 새로운 역사를 활짝 열고, 세상의 중심에 우리 경북을 우뚝 세워나가도록 함께 매진하자"고 강조했다.
(사)유교문화보존회(회장 이재업)가 주관한 이날 입주 고유제에서는 김관용 지사가 초헌례를, 장대진 도의회 의장이 아헌례, 권영세 안동시장과 이현준 예천군수`경북시장군수협의회장인 남유진 구미시장이 함께 종헌례를 각각 올렸다.
이들은 토지 신령님께 엎드려 절하고 "검무산을 등지고 낙동강 기슭 이곳에 새 터를 펼치니 주민들에게 복될 땅이요, 도청 관아를 조성함은 도민의 아낌없는 성원"이라고 고(告)했다. 또 "옛것을 버리고 새 것을 좇음은 하늘이 내리신 순리의 명령을 받음이요, 관청과 백성이 융화됨은 지사께서 정치를 잘함이라"고 도청 이전을 현실화시킨 김관용 지사의 치세를 칭송했다.
이어 신청사 이사 차량에 소금과 팥을 뿌리는 액막이를 통해 안녕을 기원했다. 신이 내려주는 복을 마신다는 '음복'(飮福)의 의미로 구내식당에서 참석자 모두 떡, 과일, 음료 등 음식을 나누며 새 천년 경북시대 개막을 축하했다.
이날 행사는 35년 동안 끌어온 도청이전 문제에 종지부를 찍고, 웅도 경북의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는 역사의 날이 됐다. 경북도청 이전은 단순한 주소지 변경을 넘어 경북의 정체성, 경북의 문화, 경북의 역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전환점이 되고 있다.
◆김관용 지사의 뚝심, 5수(修) 만에 이전 결정
2008년 6월 9일,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300만 도민들의 결단으로 경북도 112년 역사(1896년 13도제 시행에 따라 경북도 탄생)의 새 장을 펼쳤다. 이전 예정지가 안동`예천으로 선정됨에 따라 경부선축(경제자유구역), 동해안축(에너지벨트), 내륙축(낙동강`백두대간) 등 경북도가 추진하고 있는 발전 축이 더욱 균형을 이루게 됐다. 신도청 소재 도시를 100년 뒤에도 남을 명품도시로 만들겠다"고 발표, 신도청 안동시대를 선포했다.
2006년 7월, 김관용 지사는 취임과 함께 도청 이전을 7대 전략과제의 하나로 정하고 2008년 상반기 이전 예정지역을 확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경북도청 이전은 30년 만에 부활한 1991년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이슈로 등장했다. 선거 과정에서 현안으로 떠오르자 도의회는 이듬해부터 도청이전특위를 구성하고 조례 제정과 후보지 선정 용역을 의뢰했다. 그러나 도청이전사업은 1995년 3월 후보지 선정 용역보고서가 도의회에서 불신결의돼 첫 번째 실패의 쓴잔을 맛봐야 했다.
이후 집행부는 추가로 3곳을 후보지로 선정해 이전사업을 추진했으나 도의회에서 후보지 선정을 둘러싼 잡음으로 표결도 못한 채 집행부로 떠넘기는 바람에 또 한 차례 무산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경북도는 1997년 6월 도청이전추진위 구성 등 원점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했으나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방치, 세 번째 도청 이전 염원을 꺾어야 했다.
표류하던 도청이전사업은 1999년 전남도청 이전이 확정되면서 다시 목소리가 거세졌고 경북도는 '도청소재지추진위'를 구성, 법적 근거 마련에 나섰다. 그해 12월 도의회는 '시도 통합론과 정부의 행정체제 개편' 등을 이유로 위원회 설치 조례안 심의를 보류하는 바람에 네 번째 벽에 부딪혀야 했다.
하지만, 2006년 7월 김관용 지사가 취임하면서 도청이전 사업은 '5수'(修)만에 2008년 6월 9일 안동과 예천으로 결정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4전5기' 도청이전 역사를 이끌어낸 것이다.
안동시는 당초 1995년 경북도의회의 용역 결과 1순위 지역으로 뽑힌 안동 풍산읍 수리 지역을 후보지로 신청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인근 시`군과의 공동신청이 북부지역 단일화와 다른 시`군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예천과 손잡기로 하고 2008년 5월 13일 오전 11시 안동시 풍천면 갈전리와 예천군 호명면 시`군 경계 지역인 후보지 신청지역 현지에서 연합 후보지 협약식을 갖고 공동 유치로 선회했다.
◆경북의 정체성`문화`역사 제자리 찾은 도청
경북도청 이전은 단순한 소재지의 변경을 넘어 경북의 정체성, 경북의 문화, 경북의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특히, 경북도청이 '경상북도'라는 주소지를 갖게 되면서 우리나라 1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었던 소재지와 관할구역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해 냄으로써 도민의 자존을 회복하고 경북의 정체성을 바로잡게 된 것이다.
35년의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월 이사한 경북도청은 무엇보다 '제자리를 찾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지방자치 시대에 걸맞게 행정 관할구역과 도청 소재지가 일치하게 되는 것으로 지방자치제 이념과 논리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도청이 관할구역으로 옮김에 따라 민에 대한 맞춤형 서비스를 늘리면서 행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또 그동안 북부권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했다. 이에 따라 북부 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기고 이를 바탕으로 도내 균형발전을 가져온다는 계획을 이곳 주민들은 갖고 있다. 1990년대 중앙정부의 선택과 집중에 따른 불균형 발전 전략으로, 포항과 구미 등 동남`중부권역은 다양한 국책사업 유치에 힘입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이들 지역에는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인구가 크게 증가한 반면 농업을 근간으로 한 북부지역은 극심한 이농 현상으로 매년 인구 감소라는 악재에 시달려야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08년 6월 도청 이전 결정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경북도는 신도시가 문화와 생태 행정도시 기능을 갖춘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조기 정착하기 위해서는 개발 초기 인구 유입 촉진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도청 이전과 함께 신도시 내 유관기관 및 단체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유다. 이를 위해 신도시 이전 대상기관에 대한 기초자료 등을 토대로 총 130개 기관을 유치대상 목표로 정하고 해당 기관과 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경북도는 도청 이전을 단순한 청사 이전이나 공무원들의 사무공간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행정과 문화, 역사와 혼이 함께 옮겨가는 정신의 문제도 포함돼 있다고 강조한다.
경북도는 도청 이전을 계기로 신도청을 중심으로 새로운 발전 축이 만들어져 낙후된 경북 북부지역에 성장동력이 하나 더 구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존 대구와 구미, 포항에 더해 신도청 축이 새롭게 가동되는 셈이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경상도 700년의 찬란한 영광과 자존의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신도청 시대, 새로운 희망의 나래를 활짝 펼치게 됐다. 300만 도민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대통합의 시대로 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