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과 한국의 닮은 꼴 정치
2016.04.13. 15:56
우리나라는 20대 총선으로 떠들석해서 정치에 관심이 많이 가고 있다. 정치란 골치 아프기도 하지만 우리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인 것은 사실이다. 필리핀 또한 마찬가지다. 절묘하게 닮아있는 두 나라의 정치 현황을 비교해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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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자부심 중 하나는 민중의 노력으로 민주화를 이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국민들의 요구에 의한 정권교체를 이루었는데 그게 바로 1986년에 있었던 피플파워다. 이는 다음해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6월 항쟁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두 나라 모두 오랜 외세의 지배로부터 독립했고 그 과정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는 닮은꼴을 감안한다면 상당한 친근감마저 든다.
피플파워는 마르코스라는 독재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다. 1965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F. E. 마르코스는 대미관계 일변도의 외교정책에서 벗어나 아시아 외교를 축으로 한 외교정책의 다변화를 시도하고 공산권 국가와도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등 활발하게 움직였다. 또 농지 개혁과 식량증산·산업재편성, 외자도입을 비롯한 투자촉진정책 등의 경제개발 시책을 추진했다. 상당히 좋은 출발이었고 의욕이 넘쳤다. 그러나 1969년 대통령에 다시 당선된 마르코스는 1972년 9월에는 계엄령을 선포하여 3선을 금지하는 헌법규정을 폐지함으로써 자신의 영구집권을 위한 길을 터놓았을 뿐만 아니라 1973년 1월에는 대통령에게 입법권을 집중시키는 새 헌법의 공포를 강행하는 등 독재체제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1972년이라는 시기와 3선 금지 폐지 개헌은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하게 느껴지는 단어다. 당시 상황은 미국과 구소련의 냉전시대가 극렬하게 대립하던 시기여서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던 국가에서 볼 수 있었던 공통적인 현상이다.
이후 마르코스는 잠정의회의 구성과 동시에 대통령 겸 총리에 취임함으로써 형식상의 의원내각제 체제를 갖추는 한편, 부인 이멜다를 마닐라 시장, 아들을 대통령 보좌관으로 임명하는 등 족벌 독재체제까지 갖추게 되었다.
마르코스의 독재체제에 투옥 등 탄압을 받으면서 항거하여 온 반정부 세력들은 1983년 8월 미국에서의 망명생활 끝에 귀국한 아키노 전 상원의원이 마닐라 공항에서 피살되고, 이 사건에 군부가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짙자 더욱 격렬한 반정부 운동을 펼쳤다. 이 사건으로 정국은 혼란에 빠지고 시민들은 하나로 뭉치게 된다. 본격적인 피플파워의 발단이다.
마르코스는 이러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호도책으로 1986년 2월 7일 앞당겨 대통령선거를 실시, 아키노 의원의 미망인 코라손과 경쟁했다. 결국 필리핀 의회에 의해 마르코스의 당선이 선포되었으나 대다수 국민은 이를 유례없는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시민불복종운동을 전개했다. 여기에 엔릴레 국방장관 등 군부 수뇌가 코라손 지지를 선언하여 양측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고, 마르코스와 코라손이 각각 따로 대통령 취임식을 가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군부대가 코라손을 지지하며 돌아서자 마르코스는 결국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하와이로 망명했다. 이것이 아직도 피플파워라고 부르는 필리핀의 민주화운동사다.
현재의 시점에서 1986년 당시의 피플파워를 돌아보면 결국 필리핀 피플파워는 절반의 성공밖에는 이루지 못했다. 혁명의 결과로 인해 국민들이 얻은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통적 엘리트들의 일선으로 복귀를 하는 계기를 만들었을 뿐, 민중들의 목소리를 민주주의 정권에서 담아내지 못했다. 빈부의 격차는 더 커졌고 빈곤층은 더욱 확대됐다. 남아 있는 것은 시민들의 힘으로 부패한 정권을 몰아냈다는 자부심뿐이다. 이러한 자부심이 또 다른 혁명으로 이어질지 그대로 실망감으로만 남아 있을지는 철저하게 필리핀 국민들의 몫이다.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마르코스 향수는 민주화에 대한 갈망보다 경제적으로 허덕이는 현실에 대한 원망이다. 그래도 그때는 배고프지 않았다는 것이 마르코스 향수의 주된 내용인데, 경제가 불안하면 민주화도 없다는 말이 새삼 절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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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먹고 살기에 바쁜데 남의 나라 정치까지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고 이상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여기에는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일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일부 가문들의 정치 독점, 에스트라다 대통령 같은 서민 출신이 제도권에서 추락되는 점, 전직 대통령 딸이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 일부 가문들이 경제와 정치의 세력을 독점하기 시작한다는 점 등 유사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점은 일부 선진국에서도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대목이니 반드시 후진국 형태의 변화라고는 볼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모습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 필리핀을 통해 중요한 모델 한 가지를 공부하는 중이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얘기다.
물론 필리핀과 우리나라의 차이점은 있다. 국민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일본, 중국이라는 무시무시한 주변국이 있고 필리핀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다. 이런 주변 상황의 차이로 필리핀은 그대로 국가가 존속되지만 우리는 자칫 잘못되면 세계 지도에서 없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극복의지가 필리핀보다는 훨씬 높을 것이다. 이게 다른 점이다.
지금 우리가 필리핀의 대선을 지켜보고 향후 변화를 주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라의 미래라는 것은 반드시 희망적으로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나중에 커서 다른 나라에 가서 일하며 돈을 벌어 집으로 보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원치 않는다.
[출처] 필리핀과 한국의 닮은 꼴 정치|작성자 마부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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